매일신문

3代가 일군 '기적의 도서관'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의 '사랑 나누기 공부방'. 이름은 공부방이지만 가족 3대가 수십년에 걸쳐 모은 책들로 꾸민 '기적의 작은 도서관'이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연구교수인 동용국(45)씨는 부친이 모아둔 서적과 자녀들이 저축해 산 책, 그리고 이웃에서 얻어온 책들로 올초 1천200여권을 갖춘 도서관을 열었다. 불우 아동을 위한 도서관을 만들겠다며 책을 모은 지 10년 만에 꿈을 이룬 셈이다. 동씨의 집은 도서관일 뿐 아니라 집 전체가 불우 아동의 쉼터이기도 하다.

동씨네 집에는 현재 불우 어린이 35명이 매일 저녁을 함께 먹고 있다. 지난해까지 10명 정도였지만 올 들어 갑작스레 늘어났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많은 동네에서 처음 책을 보러온 아이들 한 두명씩에게 밥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던 것이 어느덧 이만큼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늘어난 숫자만큼 아이들 가슴에 담긴 사연들도 하나같이 기구했다.

강인준(가명·9·초교 2년)군은 10년 전 달서구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당시 숨진 형(당시 영남중 2년)을 잊지못한 어머니가 늦둥이로 낳은 아이. 형편이 워낙 어려워 이곳에 맡겨졌다. 엄마가 없는 이석호(가명·11·초교 4년)군은 지난 번 가야산에 함께 놀러갔을 때 하늘의 별똥별을 보며, "엄마가 하늘에서 별똥별을 타고 내려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근처 미등록 아동보호시설에 사는 박상훈(가명·15·중학교 3년), 상현(가명·10·초교 3년)군 형제는 30~40분을 걸어 이곳에 와 밤 늦게까지 놀다가 시설로 돌아가기도 한다. 또 갈 곳 없는 많은 아이들이 도서관 옆에 있는 침대방에서 서로의 외로움을 보듬어가며 잠을 청하기도 한다.

동씨의 아내인 사회복지사 이은희(42)씨는 "지난 97년 외환위기때보다 가정 파괴가 더 심각하다"며 "해맑게 자라야 할 아이들이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동씨 가족이 도서관을 짓기까지는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6명 가족이 함께 생활하며 아직 그 흔한 자가용 한 대 없다. 큰 딸 지선(18·효성여고 2년)이는 1시간 이상 걸어서 학교에 가고, 아들 길준(15·화원중 3년)이와 작은 딸 유선(14·화원중 2년)이도 30분 이상 걸어서 통학한다. 하지만 불평 한마디 않는다. 동씨 역시 현재 교환교수로 와 있는 경산의 모 대학까지 출근하려면 버스를 네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아내 역시 18개월된 늦둥이 세준이를 업고 병원이며 시장을 다닌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 책을 사고, 또 집 없는 아이들을 돌봤다.

동씨네 가족을 도와주는 후원단체는 없다. 다만 이웃들이 가끔 찾아와 몇 만원씩 쥐어 주는 것이 전부. 눈물겹게 고마운 사람들이다. 연봉 대부분(연간 3천여만원)을 이곳에 쓰고 있는 동씨에게 사정을 모르는 어떤 이는 "국회의원 출마할거냐? 다른 생각이 있어서 저러는 것 아니냐?"며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져 오지만 언젠가는 참 뜻을 알아줄 거라 믿고 용기를 낸다.

동씨는 "도서관이 열리는 것을 누구보다 보고 싶어했던 아이들 할아버지·할머니는 주말마다 이곳에 와서 책을 정리해준다"며 "부모없이 버려진 아이가 웃으면 하늘도 웃고 땅도 웃는다"는 히브리어 속담을 들려줬다.

동씨네 가족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내달 대구시종합자원봉사센터 주관의 '제3회 대구자원봉사 대축제'에서 개인에게 돌아가는 최고상인 특별상을 받게 됐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사진설명 : 동용국 교수 부부가 가족들이 만든 '사랑나누기 공부방'에서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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