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튼튼한 공동체

12월 마지막 벽에 붙은 달력을 바라보는 느낌은 착잡하기만 하다.

거리에는 다른 해보다 일찍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상인들은 거리를 오가는 손님을 끌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지만 냉랭하기만 하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고 우울해 보인다.

지금은 소위 IMF 때와는 좀 다른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노숙자가 늘어나고 상가는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오죽했으면 음식점 주인들이 솥단지를 내던지며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을까. 도처에 불안과 불신, 증오와 갈등, 좌절과 불만으로 가득 차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갈기갈기 찢겨져나가는 느낌이다.

이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사회가 튼튼하고 환상적인 그런 공동체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최근 '환상적인 가족 만들기'란 책이 번역 출판되었다.

미국의 스틴넷 박사 부부와 드프래인 교수 부부는 25년 간 세계 각국의 1만4천여 성공적인 가족을 대상으로 문제점을 찾기보다 성공적인 가족의 특성을 찾는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족을 튼튼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환상적인 가족이 되게 하기 위한 여섯가지 공통적인 특징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헌신 - 튼튼한 가족의 구성원들은 서로의 복지와 행복을 촉진하기 위해 헌신할 줄 안다.

② 감사와 애정 - 튼튼한 가족의 구성원들은 서로 상대방의 진가를 인정하고 고마움과 애정을 표할 줄 안다.

③긍정적인 대화 - 좋은 가족 구성원들은 대화기술이 뛰어나고 대화시간을 많이 갖는다 ④ 함께하는 시간-튼튼한 가족의 구성원들은 서로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

⑤ 영성적 풍요 - 튼튼한 가족의 구성원들은 삶에 대한 비전과 긍정적 사고를 갖고 있다.

⑥ 스트레스와 위기 대처 능력 - 튼튼한 가족의 구성원들은 스트레스나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

이상의 여섯가지 특징들은 아주 평범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 사회가 여러 가족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러한 원칙들을 우리 공동체로 확대하여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우리사회는 서로에 대한 헌신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들은 말로는 애국을 외치지만 국민을 위해 참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국민들도 각자의 생업에서 최선을 다하기보다 정부가 어떻게 해 주기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노사간이든, 여야간이든 정부와 기업간이든 서로에게 헌신할 때 우리 공동체는 튼튼해질 것이다.

둘째 우리 사회는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거나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경우가 드물다.

과거의 잘못을 캐내겠다고 서로 삿대질하며 싸우거나 상대편에게 욕설을 함부로 쏟아낸다.

이것은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이지 공동체가 하나로 뭉쳐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우리사회는 대화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는다.

걸핏하면 거리로 뛰쳐나오고 물리력을 행사해서 자기주장을 관철하려고 한다.

여야가, 노사가, 대통령과 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가슴을 열어 놓고 오순도순 대화하며 일을 풀어 갈 수는 없는 것일까.

넷째 우리의 정치지도자는 국민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국민 속으로 내려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는 없을까.

다섯째 우리 국민들에게 서로 공유하는 국가발전의 비전이 없다.

또 정부가 제시하는 정책에 대해 신뢰하지도 않는다.

정부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비전을 그려 보이고 그것을 차근차근 실천해 갈 때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여섯째 우리 사회는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바꾸는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항상 위기는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어떻게 통합된 국민적 에너지로 결집해 가느냐 하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다.

IMF때 우리 국민은 자발적인 금모으기 운동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앞장섰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에너지도 그런 대처 능력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불과 한달이 안되는 날짜만 지나면 새해가 온다.

튼튼하고 환상적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이러한 원칙들을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지켜나간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부디 새해는 밝은 모습, 정답게 웃으며 담소하는 그런 분들을 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손병두(전 전경련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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