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갈가마귀떼 들판을 쪼아대고 있었어요

마을은 문을 닫고 눈을 맞고 있었어요

눈을 받아먹는 하천의 혓바닥이

마른 돌덩어리를 적셔주고 있었어요

보이지 않는 하늘 깊은 곳에서 내려온 눈이

겨울바다의 얼굴을 씻어주고 있었어요

재갈매기떼 울음이 바다를 쪼아대고 있었어요

길도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고 있었어요

이토록 미치게 아름다운 풍경 있어, 살수록

춥고 쓸쓸한 마음 조금은 위로 받을 수 있었어요

문영 '겨울, 감은사지 부근'

'시는 영원한 자동사이다.

'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의식주의 경우와는 달리 문학이란 생존의 차원에서 삶을 간섭하거나 구속하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갈가마귀떼의 들판, 문 닫은 마을, 눈 내리는 하천, 마른 돌덩어리, 겨울바다, 재갈매기떼 울음 등 무공해한 것들로만 구성된 풍경은 미치게 아름다운 시 같다.

그것은 그냥 그렇게 그곳에 영원한 자동사로 있다.

차 타고 쌩쌩 함부로 풍경 속을 달리지 말라. 발걸음 멈춘 저 길의 시 읽기를 방해할까 두렵다.

강현국(시인·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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