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2004년 한국, 성장의 그늘

연말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구세군의 자선냄비도 다시 거리로 나왔다.

여기저기서 송년회(送年會)로 떠들썩하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내면서 어려웠던 일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이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왠지 연말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어색하다.

망년회 소식을 전하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지만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송년(送年)의 기분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왠지 모를 허탈감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태식이가 죽었다.

지난 18일 대구시 동구 불로동 김씨의 월세방 장롱에서 김씨의 둘째 아들인 4살배기 태식이가 숨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지체장애를 가진 태식이는 오래 전부터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다가 지난 16일 경련을 일으키며 숨졌다고 한다.

김씨 부부는 사람들이 볼까봐 두려워 아들을 장롱 속에 넣어 두었다고 한다.

경북대학교 법의학교실의 부검 결과 발표에 의하면 태식이는 오랜 기간 굶어 몸무게가 같은 또래 정상 어린이 몸무게의 3분의 1에 불과한 5kg 상태에서 아사(餓死)한 것으로 밝혀졌다.

태식이가 굶어 죽은 것이다.

김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30대로 젊고 노동력이 있어 국가가 생계를 일부 보전해주는 '국민기초생활 수급대상자'가 아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극빈층이었다.

2년 전 직장을 잃고 막노동을 하던 김씨는 두 달 전부터는 일거리가 떨어져 수입이 거의 없어 굶기를 밥 먹듯 해야 했다.

온 가족이 하루 한 끼는커녕 거의 매일 굶었고, 한 달에 1주일 정도는 전혀 식사를 하지 못했다.

보증금 1백만 원에 월세 25만 원짜리 김씨의 셋방에는 텅 빈 냉장고만 있을 뿐 먹을거리가 전무했다.

한달에 1~2만원에 불과한 전기료를 제 때 내지 못해 수개월 전부터 집주인이 대신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타까운 점은 김씨 가족이 국가기관으로부터도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건 발생 일주일 전 태식이 어머니는 '후천성 성장발육저하'를 겪고 있는 아들을 장애아로 등록하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았지만 그냥 발을 돌려야 했다.

동사무소가 현장조사 대신 진단서 등 관련 서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병원비도 없고 절차도 복잡해 엄두를 못 낸 것이다.

태식이 어머니도 정상이 아닌 정신지체 3급 장애자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의료기관의 정신장애 진단도 받지 못했고 장애인 등록도 하지 못했다.

김씨 가족은 2년 전부터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어느 누구도 기초생활 수급권자 신청이나 장애인 등록에 대해 조언해주지 않았다.

관할 구청 역시 이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최근 전국적으로 실시된 차상위계층 조사에서도 김씨 가족은 포함되지 않았다.

태식이는 굶어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굶겨 죽인 것이다.

경찰이 태식이 부모에 대한 정신감정을 실시하여 정상으로 판정될 경우 '유기치사' 혐의로 형사 입건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보도를 접하게 되면서 분노가 더욱 더 치밀어 오른다.

빈곤이 대물림되는 가난한 집에서 장애아로 태어나, 빈곤과 장애의 일상을 죽음으로서 벗어난 태식이의 주검 앞에, 자식의 배를 곯린 아버지를 원망할 것인가, 아이의 주검을 어찌할 바 몰라 했던 정신지체 어머니를 탓할 것인가. 태식이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무관심이 빚어낸 일이며, 특히 성장의 그늘을 살피지 못하고 매일 정쟁으로 국록만 축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위정자들이 크게 책임져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서민들은 지금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특히 영세민과 노숙자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정규직 일용 노동자들의 경우 최악의 실업난에 허덕이며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고 스스로 자수하여 교도소로 가거나 거리의 노숙자로 전락하고 있다.

매일같이 굶어 죽거나 가족을 앞세우고 동반자살 하는 숫자가 30명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 21세기에 북한과 아프리카의 부족사회를 제외하고 어디에서 아이들이 굶어 죽는단 말인가. 우리가 추구해온 것은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굶어 죽고, 더구나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도록 방치해 두는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추구해온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아닌가.

고속성장이 야기한 불평등과 빈부격차의 폐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에서 탈피하여 빈부격차 해소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분배우선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전면 재검토하여 차상위계층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저소득층의 생활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비정규직 일용 노동자들에게도 고용보험이 전면 적용되어야 한다.

국록만 축내온 위정자들은 이제 민생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전현수·경북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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