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은 인류 역사에 있어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주제 중 하나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이 1929년에 발표한 이 책은 현재의 성 윤리체계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러셀은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수학, 과학, 논리학 등 여러 분야에 폭넓은 학문활동을 했으며 우리나라에도 '서양철학사', '게으름에 대한 찬양' 등으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평화운동, 반전 반핵운동 등 사회참여적 활동에 앞장서온 인물이다.
이 책은 1929년에 씌어졌지만 아직 우리 현실에서 다소 급진적인 주장들이 대부분이다. 기존의 성윤리와 결혼제도의 불합리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계약결혼이나 혼전동거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사랑은 자유롭고 자발적인 때에는 자라날 수 있지만 의무라고 생각할 때는 죽고 만다. 법률이라는 올가미로 사랑을 결합시키려고 하는 결혼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내용에서 러셀만의 사랑에 대한 정의를 읽을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 쟁점으로 부각한 성매매 문제에 대해서도 러셀은 독특한 관점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도덕이 엄격할수록 매춘, 성매매는 성행한다. 여성의 성생활이 자유롭게 된다면 남성은 금전만을 유일한 동기로 삼는 직업적인 매춘부를 찾지 않고도 성적 충동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유연애만이 매춘을 없앨 수 있다."
러셀에 따르면 성매매의 기원은 고상한 것이었다. 매춘부는 신이나 여신을 모시는 여사제였는데, 그녀는 지나가는 낯선 이에게 몸을 맡김으로써 신을 예배하는 행위를 수행했다. 그 시대에 그녀는 존중받았으며 남성들 역시 그녀를 존경했다. 매춘부가 비난받기 시작한 것은 이를 비난한 기독교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러셀은 자유연애만이 성매매를 없앨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
또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에 있어 '정치적인 평등'만이 아니라 '성윤리'도 이에 해당돼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러셀의 이야기들은 오랫동안 성에 대해 '쉬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온 우리 사회에는 매우 도발적인 주장으로 들린다.
러셀은 결혼생활이 행복해지려면 부부가 서로간의 사생활을 존중해주어야 하고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식을 양육하기 위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관용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이 돼야 한다는 것.
러셀의 이러한 사상은 '우애 결혼(companion marriage)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애결혼은 젊은이들이 얼마 동안은 아이를 낳지 않도록 하며 임신중이지 않다면 상호동의 하에서 곧바로 이혼할 수 있어야 하며 위자료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러셀은 우애결혼을 통해 영속성 있는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러셀은 출간 당시 파격적인 사상으로 뉴욕시립대 교수직을 포기해야 했고 여학생의 정조를 훼손시킬 염려가 있다며 피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80세에 네 번째 결혼식을 올린 그의 생애에 비춰보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러셀의 이와 같은 주장은 생활 속에 접목시키기엔 다소 생소하지만 성 문제에 있어 과도기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적어도 제도화된 결혼과 자본논리에 의해 양산되는 성논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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