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살던 집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폐가로 변한 지 넉 달째입니다."
23일 오후 8시 대구시 수성구 만촌3동 한 주택. 집주인 민모(64·여)씨는 어둠 속에서 몽땅 타버린 집과 가재도구 등을 지켜보며 세상이 무너진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8월 20일 집이 모두 불탄 민씨는 현재 인근에 월세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으며 파출부와 식당일 등을 하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어이없는 방화로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집이 잿더미가 됐지만 정부, 구청 또는 보험회사로부터 한 푼도 보상받지 못해 집을 새로 지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처지다. 민씨는 "다 타버린 집을 볼 때면 울화통이 치밀고 피가 거꾸로 솟는다"면서 "자식들조차 도와 줄 여력이 없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민씨는 보상 방법을 찾기 위해 경찰서와 구청을 찾아 하소연하고 청와대에 진정서를 내기도 했지만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돌아오는 것은 '보상할 방법을 찾고 있지만 힘들다'는 답변뿐이었다.
모자(母子) 방화범의 연쇄방화사건으로 집을 잃은 피해자들이 '우울한 겨울'을 나고 있다.
대부분 60~80대인 24곳의 피해자들은 잿더미로 변한 집을 고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월세방을 전전하거나 수백~수천만 원의 빚을 내 집을 고쳤지만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방화 피해를 당한 김모(72·수성구 수성동) 할머니는 집 수리비가 없어 한 달가량 친척집에 얹혀 지내다 최근에야 지역 노인복지회관과 친척들의 도움으로 작은 셋방을 마련할 수 있었다. 김씨는 "집이라도 고쳐 사는 사람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라며 "셋방 기일이 끝나면 어디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7월부터 4개월 동안 방화로 집이 불탄 24가구 중 9곳의 피해자들은 월세방과 친척집을 전전하고 있다.
나머지 14곳의 주택은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생돈을 들여 집을 수리했다. 이들은 현행 '범죄피해자구조법'이 생명·신체 이외에 재산상 피해는 보상해 주지 않는 바람에 날벼락을 떠안은 채 분통만 터뜨리고 있다. 이모(51·수성구 시지)씨는 큰방에 있던 가재도구가 불에 타거나 물에 젖어 못쓰게 돼 700만원이 들었다. 이씨는 "지하철 방화 피해자들도 지원을 받는데 엄연한 범죄 피해자인 우리는 달리 하소연할 곳도 없다"고 넋두리했다.
대구 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지원을 요청하며 몇 차례 탄원서까지 올렸지만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없어 안타깝다"며 "내주 초부터 대구시, 각 구·군청, 언론사, 기업체 등에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사진:24일 오전 4개월전 연쇄방화사건으로 살 집을 잃은 수성구 만촌3동의 민모씨가 잿더미로 변한 집을 보며 망연해 하고있다. 민씨는 집수리는 엄두도 못낸 채 달셋방을 전전하고 있다.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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