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돈 때문에 이혼'

'적과의 동침'은 1990년대 초반에 개봉, 인기를 누렸던 영화다. 사랑이 '소유'와 '구속'으로 맺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 이 영화가 화제를 모은 건 '소유'와 '학대'가 가부장적 권위의 산물로 해석한 현대적 감각 때문이었으리라. 결혼 4년째의 아내가 남편의 의처증과 결벽증에 견디다 못해 '자유'를 찾아 탈출해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다는 게 그 줄거리로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혼은 '불행의 극치'이며 '삶의 실패'이자 '고통'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쪊우여곡절도 많았겠지만, 유럽에서 근대적 이혼법이 확립된 건 19세기 후반에 와서다. 우리나라에선 갑오개혁(1894년) 때부터 여성의 재혼이 허용됐고, 재판 이혼은 1915년에 시작됐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나라가 '이혼 천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혼율이 하늘 높은 줄 모르니 걱정이다. 이혼은 사회적인 '비생산적 파괴행위'이라고 하지 않는가.

쪊돈 때문에 이혼하는 부부가 10년 전보다 무려 7배나 많아졌다 한다. 통계청의 '2004년 한국의 사회 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 건수는 30만4천900건으로 1993년의 40만2천600건보다 24.3% 포인트 줄어들었으나 이혼은 16만7천100건으로 10년 전의 5만9천300건보다 3배에 이른다. 특히 경제 문제로 인한 이혼 비율은 그동안 2.4%에서 16.4%로 급증했다.

쪊10년 전만도 이혼 사유는 부부 불화가 85.0%로 압도적이었다. 돈 때문인 경우는 미미했다. 그러나 외환 위기 이후 사정이 크게 달라져 속도가 붙고 있다. 돈 때문에 갈라서는 부부가 해마다 늘어나고, 근년 들어서는 심각한 상황으로만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도 힘들만큼 가계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방증이며, 가치관도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 아닌가.

쪊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결혼 20년 이상 된 부부의 '황혼 이혼율'도 10년 새 2.8배나 늘어났다니 '적과의 동침'이 여간 우려되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짐 스모크는 이혼을 '사상자인 남편과 아내는 물론 애도자인 자식들과 장의사인 변호사들이 각자 배역을 맡아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라고 했다. '막무가내 배금주의'와 민생이 뒷전인 정치·사회적인 분위기와 그 풍경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태수 논설주간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