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날가죽과 무두질

개혁 수단으로서 '혁신'은 우리 사회에서 전방위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지방의 경쟁력 강화에도 혁신은 주된 캐치프레이즈다

성격이 비슷한 공공기관을 몇개씩 묶어 지방에 집단 이전하는 정책에 정부는 '혁신도시'라는 이름을 달았다.

혁신도시 건설을 놓고 경북도와 대구시가 미묘한 기류에 휩싸이고 있다.

대구·경북이 혁신도시 공동 유치에 나서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이달 초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대구시에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이에 적극적인 추진 의사를 밝힌 대구시와 달리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는 보도가 나가면서 경북도는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지역 공동 발전을 위해 대구시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경북도가 딴죽을 거는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경북도는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성 위원장의 제의를 받은 적이 없으며 시너지 효과가 큰 공공기관이 대구·경북 어디든 많이 유치될 수 있도록 대구시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해명서를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대구시에 섭섭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그런 중요하고 민감한 제의가 있었다면 경북도와 상의해 대응책을 공동 모색해야 했는데 '언론 플레이'부터 했다는 것이다.

균형발전위의 로드맵에 따르면 혁신도시는 광역시·도에 하나씩 건설될 예정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경북도는 도내에 혁신도시 2개를 건설해야 한다는 요구를 해왔다.

그런 마당에 대구·경북 인접지역에 혁신도시를 1개 건설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발상은 균발위가 천명한 원칙에 맞지 않으며, 인센티브가 오히려 대구와 경북에 불이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이전 및 혁신도시 건설이 자칫 심각한 지역간 갈등을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대구시와 경북도가 보인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생을 모색한다 하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이익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자체들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유치를 바라는 시·군의 요구를 조율할 권한과 기능을 광역자치단체는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 협약 체결권을 광역자치단체에 은근슬쩍 떠넘겨 버렸다.

이는 직무유기다.

공공기관 이전에는 난관이 많다.

수도권과 야당, 공공기관 노조의 거센 반발을 이겨내야 하고 지역간 갈등도 최소화해야 한다.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혁신'은 날가죽(皮)을 무두질해 새롭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말로만 하는 혁신은 피로감만 줄 뿐이다.

언제까지 말로 무두질만 할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분명한 원칙일 것이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사회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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