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탕하고 사치스러우며 포악한 성정으로 폭군(暴君)의 대명사로 알려진 네로 황제는 기원후 68년 6월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은 그였지만 자신의 목숨만은 남의 손에 내놓지를 않았다.
네로가 처음부터 폭정을 펼친 것은 아니었다.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의 의붓아들로 어머니가 황제를 독살(54년)해 제위에 올랐을 때 불과 16세, 이때부터 5년 간 네로는 근위장관 브루투스, 철학자인 스승 세네카의 후원으로 해방노예 중용, 감세, 원로원 존중, 매관매직의 폐단을 시정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었다. 그리스 문화에 심취해 그리스의 체육'예술 콩쿠르를 로마에 도입하고 스스로 극장무대에 서기도 했고, 그리스를 여행하며 사대제전(四大祭典)을 개최하고 경기에도 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평화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는 점차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을 나타내기 시작, 의붓동생은 물론 어머니, 심지어 자신의 비(妃)까지 살해했다. 브루투스의 병사'세네카의 은퇴 이후 난행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됐다. 64년에는 로마시 대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 교도에게 돌려 대학살하고 그 폐허 위에 화려한 황금궁전을 세웠다. 원로원 의원 피소 일파의 음모 발각 때는 세네카'루카누스를 포함한 고위 측근을 처형하기까지 했다.
오랜 폭정으로 결국 반란이 일어났고 근위군이 돌아서자 그는 로마를 탈출한 뒤 최후를 맞이했다. 절대권력도 민심을 잃으면 결국 하루 밤의 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892년 정치가 신익희 출생 ▲1954년 한국일보 창간 ▲1981년 미국 하버드대에 한국학연구소 설립.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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