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제가 일본 훈련병으로 있다가 탈영한 지 61년째군요. 억울하게 죽는구나 생각했는데 이제라도 누명을 벗게 돼 홀가분합니다."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건국포장)로 추서된 권중혁(84·대구시 남구 대명동)옹은 8일 인생은 '사필귀정'인 것 같다며 운을 뗐다. 그는 일제 징병이 극에 달하던 해방 직전 학도병으로 징집됐다가 탈영, 보름 만에 다시 체포돼 일본에서 1년여간 옥고를 치렀다.
포항이 고향인 권옹은 보성전문(고려대 전신) 재학 시절이던 1944년 1월 20일 징집돼 대구24부대에 배속됐다. 버마로 가는 보충부대인 이곳에서 훈련을 받던 그는 그해 8월 8일 밤 조선인 청년 5명과 함께 부대 담을 넘었다.
"남만으로 가면 다 죽는다는데 동포들은 그 실정을 모르는 거야. 징병거부 운동을 하거나 게릴라라도 할 요량이었지."
권옹은 그러나 탈영 보름 만에 군위군 고로면에서 일경에 붙잡혀 5년형을 언도받고 그해 12월 일본 후쿠오카 '일본 육군 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는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된 지 두 달이 되도록 풀어줄 기미가 없는 거야. 형무소장이 '상부의 지시가 아직 없다'고 하면서 내 고향을 묻고는 '지금 조선은 38선으로 갈라졌는데 당신은 남쪽이라 다행이군' 하더라구. 그래서 '38선이 뭐요' 하고 물었지."
1945년 10월 귀국선을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해방된 조국은 한창 사상논란에 휩싸여 있었다. 대구여중에서 교편을 잡던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빨갱이로 몰렸다. 이른바 남로당 세포사건이 불거지던 1949년 고문에 못 이긴 주위 사람의 고발로 권옹은 남대구 경찰서에 연행돼 조사받고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이 때 그는 '남로당 선전부장'으로 조작됐고 독립유공자 신청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그러다 이번에 대구·경북 광복회의 도움으로 누명을 벗게 됐다.
"3년 전에 나를 고발한 그 사람을 수소문 끝에 만났어요. 왜 그랬냐고 했더니 '미안하다'고 하더구만. 사실 이제 와서 따져봐야 뭐 하겠소."
그는 다행히 지인의 소개로 포항 구룡포 중학교 서무과장에 채용됐고 1987년 정년퇴임을 했다. 권 옹은 "공의 크고 작음을 떠나 그 시대 사람들은 누구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며 "돌아오는 광복절에는 살아남은 훈련병 동기들이나 만나야겠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사진:지난 3일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권중혁옹이 옛 군대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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