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의 역사는 문화의 역사와 같이한다. 위작이 부쩍 증가한 것은 회화와 판화가 탄생한 15세기 이후. 국제적인 미술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19세기 말 유럽에선 인기작가의 위작이 급격히 범람하기 시작했다.
위작은 대체로 희소성이 매우 높은 작품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고흐, 렘브란트, 우리나라의 경우 서양화는 이중섭, 박수근, 한국화는 이상범, 김은호, 김기창 등이 주로 위작 대상 목록에 오른다.
최근 국내 미술계를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이중섭의 위작 시비는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유족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에 대해 한국미술감정협회는 물론 검찰이 의뢰한 미술전문가들 모두가 위작이라고 판명한 상태이다.
때로는 감정가들은 '진짜'라고 하는데 작가가 '아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위작 시비로 유명한 천경자씨의 '미인도'가 바로 그 작품. 화가 자신이 '내 그림이 아니다'고 주장했음에도 화랑협회는 '천경자의 작품'이라고 선언, 작가가 붓을 꺾고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지역에서도 미술품 위작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2000년 대구미술협회가 주최한 '대구미술 100년전'에서 김수명, 손일봉, 주경의 작품이 위작이라는 지적이 유족으로부터 제기돼 미협이 사과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1998년엔 원로 서양화가 강우문 화백의 가짜 작품이 지역화랑가에 유통돼 물의를 일으키자 화랑주가 이를 환불해주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이상범의 가짜 산수화 판매사건에 연루된 대구 화랑업자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등 유명 화가의 그림을 위조하려면 최소 10~20년의 공력은 있어야 한다는 게 미술계의 정설. 아마추어 작가도 있지만 국전 등에 입상한 실력 있는 작가도 위작 제조에 한 몫한다고 한다. 하지만 A급 위작 전문가는 10여 명 내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미술품의 경우도 마찬가지. 위조 기법이 워낙 교묘해 수십 년간 고미술품을 다뤄왔던 고미술상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한 고미술판매상은 "위조 전문가들은 여러 화학약품으로 감쪽같이 골동품으로 둔갑시켜, 전문가들조차 속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박물관들의 소장품도 위작으로 판명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재 국내 미술품 진위감정을 하는 기구는 한국고미술협회와 한국화랑협회, 한국미술품감정가협회가 있다. 한국화랑협회 김태수 회장은 "감정 의뢰가 들어오는 작품의 절반 정도가 위작으로 판명난다"고 말했다. 감정가는 작고 작가의 작품은 1점당 40만 원, 생존작가는 25만 원선.
하지만 과학적인 데이터베이스나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 안목(眼目)에 의한 감정이 이뤄지는데다,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은 물론 국가검증의 감정사 제도조차 없어 위작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