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결혼하는 일본 아키히토 왕의 장녀인 노리노미야 공주의 신랑감은 도쿄도(都) 직원이란다. 솔직히 놀랍고도 신선하다. 얼마든지 명문대가의 신랑감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일개 평범한 공무원이라니. 게다가 결혼과 함께 노리노미야 공주는 왕실 전범에 따라 왕족의 지위를 잃고 평민이 된다 한다. 공주에겐 '사랑'이나 '따뜻함' 같은 것이 그 어떤 조건보다 중요했나 보다.
◇ 우리 사회 최상류층 혼인 문제의 경우는 '끼리끼리 할 것'이라는 일반 대중의 예상과 전혀 다르지 않다. 지난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산하 참여사회연구소가 이른바 '권력 게놈지도'라 할 만한 사회적 지형도를 내놓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지난 1991년부터 국내 50대 재벌과 3천여 명의 정'관계, 학계, 언론계 인사들의 혼인관계를 추적 조사한 결과 이들 서로간에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거대한 혼맥도가 만들어지더라는 것이다.
◇ 우리 사회 최상류층의 통혼 관계는 말 그대로 '그들만의 잔치'다. 또한 그것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뚜렷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유지혜 씨의 석사 논문 '최상류층 미혼 자녀들의 생활양식을 통한 계급 재생산 연구'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즉 "소득 분포 상위 0.5%에 해당하는 최상류층 자녀들은 끼리끼리의 결혼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 재벌가와 재벌가, 재벌과 고위 관료, 고위 관료 집안 간의 결혼 등으로 친족 관계를 형성하며 부모 세대가 구축해 놓은 사회적 관계망을 활용해 자신들의 비즈니스와 사회활동에 도움이 될 각계각층 관리자들과 친분 관계를 쌓는다. 재미있는 건 조사 대상이 된 최상류층 20대 미혼 자녀 10명 모두가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답한 점이다. '사랑'보다 부모의 심중이 더 중요하다는 거다. 현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최상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 철학(?)인 셈이다.
◇ 한국의 명품 주거지로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강남도 그들에겐 '신흥 부자들이나 사는 곳'일 뿐이다. '묵은 부자'인 그들에겐 전통 있는 강북의 부자촌이 제격이라는 것이다. 끼리끼리의 혼인 관계를 통해 '신분 재생산'에 여념없는 한국의 최상류층. 그래서 일본의 노리노미야 공주가 더욱 돋보인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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