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가 한창 제철이다.팔공산 산자락 순환도로를 돌아가노라면 곳곳에 하얀 스티로폼 상자에 먹음직스레 담아놓은 짙은 보랏빛 포도송이들이 늦 더위에 지친 여름 입맛을 돋운다.
일요일인 어제 팔공산 포도밭들이 내려다 보이는 부인사(寺) 길섶에서 포도를 먹으며 문득 성서(마태복음)에 나오는 포도원 얘기를 떠올려 봤다. 당시 이스라엘의 포도밭도 주인이 품꾼을 사서 포도를 수확했다. 작업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경이었다고 한다.
어느 포도밭 주인이 아침 일찍부터 품일을 얻으려고 줄서 기다리는 일꾼들에게 하루 품삯을 1데나리온씩 주기로 하고 포도밭안에 들여보냈다. 한나절쯤 다시 밭으로 와보니 또 다른 품꾼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너희는 어찌 하루종일 놀고 서 있느냐'고 했더니 '딴 포도밭엔 품꾼으로 써주는 밭주인이 없어서 이리로 왔습니다'고 했다. 그러자 주인은 '너희도 포도밭에 들어가라'고 일거리를 주었다. 이번에는 오후 5시쯤 주인이 밭에 다시 나가보니 또 기다리는 일꾼이 더 있는지라 '너희도 들어가라'고 허락했다. 문제는 일이 끝나고 품삯을 갈라 줄때 시비가 불거졌다.
주인은 오전 9시에 온 일꾼이나 오후 2시에 온 일꾼이나 오후 5시에 밭에 들어가 고작 1시간 일한 일꾼이나 똑같이 1데나리온씩 지불했다. 당연히 9시에 온 일꾼들이 불평했다. '왜 우리보다 8시간이나 적게 일한 일꾼에게 똑같이 1데나리온씩이나 주느냐.' 성서에서는 주인이 이렇게 대답한다. '친구여, 내가 자네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 너와 나는 1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네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사람에게 똑같이 주는 것은 내뜻이다. 내가 후하게 하는 처사가 당신 비위에 거슬린다는 거냐.'
당시 중동의 기후는 포도가 익은 직후 바로 우기(雨期)가 닥쳐 포도알이 썩기 때문에 1시간이 아니라 30분이라도 일할 사람만 있으면 불러다가 한 송이라도 더 빨리 따내는 것이 이익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하느님은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통해 나와 처지가 다른 자에 대한 베풂을 두고 따지거나 탓하는 대신 배려해 주는 진정한 평등과 나눔의 정신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5시에 왔는데도 밭에 들여보내 일을 주고 똑 같은 임금을 베풀어 주었을 때 그 일꾼은 어떤 감사와 감동의 마음이었을까. 오히려 8배 시간 만큼 더 부지런히 많이 땄을지도 모른다.요즘 대통령 되기전에는 '농부가 어떻게 밭을 탓하겠습니까'라고 했던 노 대통령이 연일 국민탓, 언론탓, 야당탓, 강남부자탓을 대고 29% 지지율까지 네탓으로 불평하고 있다.
농사 솜씨 궁리할 생각보다 밭만 나무라는 어설픈 농부 같은 변명들을 들으면서 2천여년 전 포도 밭주인이 계층간의 마찰을 상호배려와 조정을 통해 통합을 끌어낸 경영 리더십을 생각해 보게된다.
지금 나라 경제 사정을 비유 하자면 2천년여전 성서 속의 포도밭 사정과 크게 다를바 없다. 우기가 닥쳐 포도가 썩기전에 보수니 좌파니 강남사람 따지고 있을게 아니라 고양이 손도 빌려 오듯 모든 계층의 통합된 역량규합이 절실한 때다. 누가 더 덕보고 어느 계층이 손해보느냐 눈 부라리며 따지고 캐고 탓하며 세제나 정책으로 밀쳐 넘어뜨리는데 정신 팔 여유가 없다.
포도밭 일꾼들의 노동시간 조건 등이 제각각 다르듯이 우리사회의 계층간 격차와 기득권의 크기는 어차피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진 계층에 대한 과도한 역차별 같은것은 통합을 깬다. 반대로 오후 5시에 겨우 일거리를 얻은 일꾼처럼 기득권의 크기가 미약한 탓에 기회가 약화된 빈곤계층에게 밭주인이 약간의 배려를 더 베푼다고 해서 반발하는 것도 통합을 깨는 일이다.
지도자가 유의해야 할 일은 포도밭 주인처럼 이해관계가 다른 계층간의 갈등을 말잔치나 오기가 아닌 화합하는 선정(善政)과 권위로 이끌고 조정해야 한다. 부디 우리 지도자가 임기 후반전에는 존경받는 대한민국 포도밭 주인이 되셨으면 좋겠다.
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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