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영양실조

고향 안동에 은거하던 말년의 퇴계 이황이 손자 안도에게 보낸 편지는 생명의 고귀함을 가르치고 있다. 병치레를 하는 아내에게 젖을 얻어 먹지 못한 아들이 영양실조 상태라며, 젖이 나오는 여종을 보내달라는 손자에게 보낸 편지다. 퇴계는 "생후 몇 개월밖에 안 되는 제 아이를 버려두고 가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답하고 있다. 생명은 저마다 귀하다는 이치를 일깨운다.

○…최근 나온 유엔 인간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60억 인구의 40% 이상은 하루 미화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이 중 10억 명은 1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연명한다. 당연히 영양실조의 최대 피해자는 어린이다. 굶주리는 어머니에게 젖을 얻어 먹기는 어렵다. 개발도상국 어린이 1억7천5백만 명 이상이 영양실조 상태라 한다. 만 5세 이전에 사망하는 어린이가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사하라 이남 서부 아프리카를 비롯한 중남미'서남아시아 등의 기아는 심각하다. 국제연합아동기금과 기아 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은 앞으로 10년 후면 기아에 시달리는 전 세계 인구가 3억 명에 이르고 영양실조로 인한 어린이 사망은 7초당 1명꼴로 나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는 북한도 빠지지 않는다. 북한 인구의 37%가 만성 영양실조 상태에 7%는 기아에 시달린다는 조사도 있다. 7만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사망 위험에 놓여 있으며 이중 수천 명은 아사 직전이다. 북한 어머니 30% 이상이 영양실조와 빈혈에 시달린다니 어린이의 영양 상태는 뻔하다.

○…지난 연말 자기집 안방 장롱에서 4살짜리 어린이가 굶어 죽은 채 발견된 사건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굶어 죽었다는 사실에 온 국민이 놀랐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한 사람은 52명이라는 통계청 조사 결과가 나왔다. 60대 이상 노인층이 31명이나 됐다. 대부분 혼자사는 노인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영양실조의 원인은 식량 부족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회 환경적 요인인 가난 때문이다. 먹는 문제에서는 풍요를 넘어 과잉의 시대다. 먹지 않은 음식 쓰레기가 사회의 골칫거리다. 그런데도 내 이웃이 굶어 죽는다고 한다. 사회의 외면이 굶어 죽는 이를 낳아서야 되겠는가.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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