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북 히어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책을 즐겨 읽는지를 보여주는 베스트셀러는 그 사회의 시대상을 엿보게 한다. 베스트셀러는 특히 출판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땀과 노력에 대한 훈장이 되고, 큰돈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면서 '암표'와 '새치기'로 혼란을 일으키는 '독소'도 적지 않다. 책 사재기와 과대광고, 언론의 후광으로 베스트셀러를 조장하는 경우가 비일비재이지 않은가.

○…최근 사반세기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저자가 이해인 수녀인 모양이다. 그 다음이 법정 스님, 소설가 이문열·양귀자, 시인 류시화, 소설가 이외수라고 한다. 가장 사랑받은 저자 중에는 시인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점은 흥미롭다. 특히 이해인 수녀의 책들은 열한 차례, 류시화는 여섯 차례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10년간은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경우가 거의 없는 모양이다. 세상은 그렇게 달라진 셈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저자 중에는 독서가에 지배력을 발휘하는 베스트셀러를 쏟아내면서 영향력을 뿌리는 경우(북 히어로)도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5년간 세 차례 이상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저자는 18명 정도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본격 등장한 이른바 '쿨 세대'의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사정이 크게 달라져 버렸다. 이념이나 가치관에 냉소적이며, 인터넷과 친숙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같은 현상은 이 기간에 비교적 영향력이 큰 저자들도 개인주의가 팽배한 쿨 세대에 맞아떨어지는 지성과 감성, 상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더구나 이 세대는 인터넷에 댓글을 붙이면서 그 공간 속의 '영웅 필자'를 찾고, 컴퓨터뿐 아니라 휴대전화'영상매체 등에 기울어 책을 잘 사지 않는 건 물론 살 돈도 줄어든 탓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또 다른 데 있다. 시와 인문서가 가라앉은 대신 실용서들이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는 실용서가 9권이나 베스트셀러에 올라 최다를 기록했다. '개인의 생존이 화두가 된 세태를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정신문화의 허물어짐을 그대로 말하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 이무튼, '백 사람이 한 번 읽는 시가 아니라 한 사람이 백 번 읽는 시를 쓴다'고 했던 폴 발레리의 말이 아프게 느껴진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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