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양준혁, 구단에 FA협상 '백지위임'

2년 계약 16~20억원 수용 한 듯

삼성 라이온스 양준혁(36)이 자유계약선수(FA)를 선언한 후 2일 구단 프런트와의 첫 만남에서 '백지 위임'이란 예상 밖의 카드로 팀 잔류를 선언했다. 양준혁은 "고향 팀 삼성에서 선수생활의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모든 사항을 구단에 위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과 양준혁을 사랑하는 야구팬들에겐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또 양준혁의 첫 번째 FA 당시 상황이나 그의 성격 등을 놓고 볼 때 삼성과의 이번 FA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은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 은근히 밀고 당기는 싸움을 기대한 대다수 야구팬들에겐 양준혁의 싱거운 기권으로 재미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양준혁은 매우 현명한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FA 시장은 지난해와 같은 호황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회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거품 빼기가 진행되고 있고 '거대 공룡' 삼성 그룹에 대해 전방위로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양준혁이 삼성을 상대로 줄다리기를 선택했다면 아마 결과는 버림받는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양준혁이 쉽게 백지 위임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날 만남 전에 사전 협상을 통해 의견 조율을 한 덕분이다. 이미 삼성은 양준혁에게 2년 계약을 전제로 16~20억 원의 몸값을 제시했고 그는 이를 적정 선으로 여겼다고 볼 수 있다.

양준혁이 또 고집을 피울 수 없었던 것은 2001년 첫 번째 FA 협상 당시의 실패 경험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LG 소속이던 양준혁은 자신의 몸값은 "4년간 36억 원"이라고 큰소리쳤다가 LG로부터 버림받았고 결국 자신의 기대치와는 거리가 먼 4년간 27억2천만 원의 조건으로 삼성과 계약했다.

양준혁은 첫 번째 FA기간 마이너스 옵션 계약에 대한 삼성의 배려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계약 기간 중 마이너스 옵션을 2차례나 충족시키지 못했으나 삼성은 책임을 묻지 않았다.

무엇보다 국내 프로야구 실정상 구단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야구의 고장 미국에서는 수익을 내 선수에게 많은 몸값을 줄 수 있지만 국내 구단들은 모 기업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해 선수 몸값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를 하면서 종업원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없는 이치다.

더욱이 '떠오르는 스타'가 아닌 '지는 스타'이기에 양준혁은 이번에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양준혁의 이번 선택을 지켜보면서 그의 대구상고 선배이자 대구의 올드 야구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삼성 출신 스타 이만수(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의 은퇴 과정이 떠오른다. 은퇴하면 미국으로 코치 연수를 보내주겠다는 삼성의 방침에 맞서 "40세까지 선수로 뛰겠다"고 우겼던 이만수는 명예(은퇴식)와 돈(해외연수비) 등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스스로 미국으로 떠나야만 했었다.

김교성기자 kgs@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