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古宅 문화재

문화유산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가 조상들의 얼과 교감하게 한다. 당시의 환경과 정신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세월까지 끌어안은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이처럼 독특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문화재 가치의 진정한 이해는 그 애호 정신 함양과 보전의 바른 자세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재가 한 번 파괴되면 죽은 사람을 소생시킬 수 없듯이 그 역사나 원래의 모습을 회생시킬 수 없게 돼버린다.

◇ 그러나 문화재 보존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한심한 수준이다. 전 국토가 개발에 따른 몸살을 앓고 있는 형편이지만, 그보다도 문화재 도굴꾼이나 전문털이들의 수법이 전문가들을 앞지르고 있다는 데 문제가 더 커지게 된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상상조차 못하는 일을 그들이 해낸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심지어는 그들의 기막힌 능력을 인정해 역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있었을 정도이니 할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 퇴계 이황(李滉)을 배출한 진성이씨의 종택(宗宅)이 문화재 전문털이들 등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이 가문의 대종손 이세준(李世俊'58) 씨에 따르면, 대지 760평 규모의 그의 안동 집(경북도 민속자료 72호)에는 끊임없이 찾아드는 도둑들 때문에 귀한 유물과 문서들을 숱하게 잃어버렸으며, 노모의 신상까지도 위협을 느낄 정도라니 기가 찬다.

◇ 그가 직장 일로 집을 떠나 노모가 홀로 집을 지키게 된 뒤로는 큰 도둑만 무려 열일곱 번이나 들었으며, 좀도둑은 셀 수 없을 지경인 모양이다. 전문털이들의 수법은 대담해 희귀한 문건 등을 한 방에 모아놓고 대못으로 밀폐해 놓은 벽을 아예 허물어 구멍을 내는가 하면, 다락방 문짝을 통째 떼어가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방문의 문고리 언저리는 문살마저 성한 곳이 없고, 집을 지키던 개가 독살되기도 했단다.

◇ 이미 오래전에 밝혀진 사실이나 영남 지역 고분은 2~3%만 도굴꾼의 손을 타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문화재들이 어디로 흘러갔을까. 더구나 도굴품은 밀매되다가 '힘 있는 수집가'에게 입수돼 버젓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기도 하지 않았던가. 이세준 씨가 하소연했듯이, 고택 등 개인 소장의 유물도 그 가문뿐 아니라 우리 민족 공동 유산이기 때문에 도난'분실 없이 보존될 수 있는 길이 찾아져야만 하리라.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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