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명과 애환' 밤무대 악사 경력 20년 이창호씨

새벽 2시. 건물의 회색 벽을 할퀴고 지나가는 바람이 매섭다. 다섯 시간 이상 키보드를 두드렸더니 손가락 끝이 얼얼하다. 목도 잠겼다. 소주 한잔 생각이 간절하다. 감자탕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신다. 맛이 쓰다. 하지만 일할 수 있는 것만도 다행스럽다.

이창호(42)씨. 그의 직업은 밤무대 악사. 밤무대에서 키보드를 연주한다. 벌써 20년을 훌쩍 넘겼다. 힘들지만 남들 앞에서 궁핍한 내색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씨에게 음악은 곧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이씨의 밤무대 인생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당시 대학가요제가 인기를 얻으며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음악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던 시절. 천성이 놀기 좋아했던 이씨 역시 학교보다 음악이 좋았다. 친구 4명과 그룹을 만들었다. 이씨는 드럼을 맡았다.

졸업을 앞둔 고3 때는 선배를 따라 밤무대에 섰다. 드럼에서 키보드로 바꿨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까지 키보드를 배웠다. 휘황찬란한 무대가 신기했다. 무엇보다 돈을 벌 수 있어 좋았다. 주머니엔 항상 돈이 가득했다.

"전성기였어요.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은행에 들어갔는데, 제가 친구들보다 3, 4배는 많이 벌었던 것 같아요. 잘 나갔죠. 흥청망청 쓰게 되더라고요."

1886년 방위 제대 후 나이트클럽에서 일했다. 괜찮겠다 싶어 이듬해에는 결혼도 했다. 당시에는 업소들이 이씨를 비롯한 악사들을 서로 모셔가려고 다툴 정도로 잘 나갔다고 했다.

1990년대 들어 노래방이 등장하면서 밤무대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92년의 심야영업금지 조치는 악사들에게 활동무대를 더 좁게 만들었다. 악사들은 해마다 사라져갔다. 설상가상으로 컴퓨터 반주기까지 등장했다. 모든 반주가 컴퓨터로 대신했다. 반주자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번창하던 회관들이 문을 닫았다.

이씨 역시 울산, 포항, 청주 등지로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이씨 역시 고교 시절 함께 한 친구들과 만든 밴드'민들레'도 구조조정을 했다. 여섯 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이런 와중에 서울을 중심으로 라이브 카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7080 카페가 바로 그것이다. 이씨는 현재 달서구 본리동 7080 카페에 출근하고 있다. 오후 8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가 그의 근무시간이다. 반응도 괜찮아 줄줄이 무너지고 있는 7080 카페를 잘 버텨가고 있다.

이씨는 가끔 지인들과 봉사활동겸 라이브 연주회를 한다. 이씨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죠. 기분이 달라요. 기분전환도 되고…. 연주가 즐거워요."

이씨의 꿈은 대도시 근교에 전원카페를 차리는 것이다. 이제는 반주가 아니라 '연주'를 하고 싶은 것이다.

벌써 20여년. 음악을 하는 건지, 컴퓨터를 하는 건지 모를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제 노래와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그럴 때가 오겠죠?"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msnet.co.kr

(2005년 11월 24일자 라이프매일 www.life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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