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울의 향토인들]향우회-(21)예천

'제2의 開城'…강인한 자생력'단합 자랑

한때 예천은 '제2의 개성'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일제 강점기 예천에서 문을 연 일본인이나 중국인 상점을 예천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데에 있다. 일본상인들이 장사가 안돼 예천을 떠나면서 "예천사람 지독한 것은 개성사람보다 더 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광복 때까지 예천읍내에는 일본인 상점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일견 '배타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는 이 일화는 그만큼 예천사람들의 강인한 자활능력과 자존심, 단결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예천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넓지 않은 땅, 빈약한 산물 때문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모인 예천사람들이 유독 끈끈한 유대를 유지하고 있는 데에서도 이같은 단결력을 엿볼 수 있다.

예천이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로 황병태 대구한의대 총장을 들 수 있다. 지난 1956년 고등고시 외교과 7회로 관계에 발을 디딘 황 총장은 관료생활 대부분을 옛 경제기획원에서 보냈다. 경제협력국장, 조사통계국장, 운영차관보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분석력과 기획력을 인정받았다. 외자(外資) 담당 사무관으로 있을 때 고 박정희 대통령이 전화로 외자도입 상황을 수시로 물어와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는 사무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관료생활을 그만둔 뒤 88년 정계에 입문, 13대(서울 강남갑)와 15대(문경·예천) 의원을 지냈다. 14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에는 주중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 때 쌓은 중국 정부 인사들과의 교분으로 국내 대표적인 '중국통' 반열에 들어가기도 했다.

권영빈 중앙일보 사장은 경북고 출신으로, 영주가 고향인 중앙일보 계열 '랜덤하우스 중앙' 김영배 대표이사의 고교 1년 선배다. 홍석현 전 회장이 주미대사로 임명되면서 사장·발행인·편집인을 모두 맡았다. 그래서 사내에서 앞글자를 따붙인 '사발편'이란 별칭으로 통한다. 월간 '세대' 편집장과 발행인을 거쳐 중앙일보 출판부장, 논설위원, 주필, 부사장 겸 편집인 등을 역임했으며 최근 한국신문협회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재계에는 이수창 삼성화재해상보험 사장이 있다. 73년 삼성화재에 입사한 뒤 제일제당, 삼성중공업을 거쳐 93년 다시 친정으로 돌아온 뒤 2001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전문경영인 중의 전문경영인'만 포진해 있다는 삼성 구조조정위원회 멤버이기도 한 이 사장은 대표이사 부사장에 취임한 지난 1999년 26.9%였던 시장점유율을 지난해 32%로 끌어올리며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로부터 국내 민간기업 중 최고등급인 A+를 받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경영능력을 자랑한다.

정계인물로는 상공부 시절 '잘 나가는' 관료로 통했던 신국환 현 의원, 안택수 의원이 있다. 전직으로는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을 지낸 신영국, 대구 중구에서 재선까지 했던 백승홍, 반형식, 신군부 출신의 유학성(작고), YS정부 때 제2정무장관을 지낸 권영자 전 의원(전국구) 등이 있다. 원외로는 장연석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총간사, 한나라당 중앙상무위 부의장을 지낸 홍일화 북방권교류협의회 부총재 등이 있다.

관계에는 행시 10회로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 주OECD 경제공사, 대통령 정책비서관, 여성부 차관, 인하대 교수를 지낸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장, 행시 18회의 윤종훈 서울지방국세청장, 장항석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박홍섭 서울 마포구청장, 김윤주 경기도 군포시장 등이 있다. 이두호 전 보건사회부 차관, 김주일 전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김시형 전 산업은행 총재도 예천 출신이다.

법조계에는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서울남부지법원장을 역임한 권남혁 부산고법원장, 인천지법원장과 대전고법원장을 지낸 정용인 변호사, 권재진 대검 공안부장, 변오연 수원지법 부장판사, 이승택·홍성칠 서울고법 판사 등이 있으며 군에는 김증기 육군본부 분석평가실장이 있다.

경제계에는 76년 재무부 사무관을 시작으로 재정경제원 국제금융심의관, 국민생활국장,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거쳐 중소기업은행장을 역임한 김종창 금융통화위원이 대표적인 인사다. 남영진 외환캐피털 대표이사, 황정기 나드리화장품 대표이사, '눈높이 교육'으로 잘 알려진 대교의 장세화 대표이사, 권교택 한솔케미컬 대표이사, 박금섭 벽산엔지니어링 부호장, 한문환 한국공항 대표이사, 국내 등산화 1위업체인 (주)트렉스타의 권동칠 회장, 임문규 대우조선해양 전무 등도 예천이 고향이다.

문화예술계에는 서양화가인 박서보 홍익대 명예교수가 있다. 한국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첫 세대로 일제 강점기의 구태를 벗지 못하는 '국전'의 개혁을 시도한 그룹의 일원으로, 한국 회화계의 원로이다. 현재 국내 20층 이상의 건물에는 대부분 그의 작품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으로 시인에 등단한 안도현 우석대 교수, 서예의 대가인 권창륜 씨, 우리 전통 그림의 부단한 현재화작업을 추구하고 있는 한국화가로 평가받고 있는 정종해 한성대 예술대학원장 등도 예천사람이다.

언론계에는 동아투위 출신으로 문화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이종욱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김의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권오문 세계일보 기획실장, 장해랑 KBS 경영혁신프로젝트 팀장, 경향신문과 영남일보 사장을 지낸 장명석 씨, 조홍래 전 연합통신 외신국장 등이 있다.

학계에는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를 지낸 장회익 한성학원 이사장, 조기흥 평택대학교 총장, 김승조 포천중문의대 의료원장, '대통령학'이란 새 분야를 개척 중인 함성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김명희 (사)한국학술연구원장, 최명박 수원과학대학장 등이 있다.

체육계에는 지난 79년 베를린에서 열린 양궁세계선수권대회에서 5관왕에 오르며 '신궁 한국'의 길을 연 김진호 한국체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정경훈기자 jgh0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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