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광각 렌즈

우리나라 최대 재벌의 딸이 이국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꽃 같은 나이의 유학생, 발랄하고 귀여운 막내딸, 2천억 원대의 젊은 부호, 갑작스런 죽음. 모든 것이 드라마처럼 극적이다. 그 집안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게조차 충격일 만큼. 모두들 한마디씩 했을 법하다.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게 있구나."

옛말에 "천석꾼은 천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라 했다. 걱정거리라곤 없어 보이는 가정도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있다. 마치 평생 등에 짐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처럼. 남들보다 많이 가지면 가진 만큼 더 행복할 것 같은데 오히려 허덕허덕 더 힘겨워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생이 결국은 공평하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모양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바이올렛 할머니의 행복한 백년(원제목 Visits With Violet)"의 저자인 블레어 저스티스는 오랜만에 시골 고향마을에 갔다가 어릴 적 이웃아줌마였던 바이올렛을 다시 만나게 됐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75세 딸을 돌보며 집안일까지 도맡아야 하는 100세의 할머니. 하지만 얼굴엔 늘 생기가 넘쳤다.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와 이혼, 딸의 자살 등으로 우울해하던 저스티스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알고 보면 남들 이상으로 우여곡절도, 근심거리도 많았던 바이올렛이지만 그녀에겐 현실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이 있었다. 바로 '매순간의 감사'였다. 숨 쉬는 것조차 순간순간의 선물이고 감사의 이유가 됐다.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고, 안 되는 일은 하느님께 맡긴다"는 긍정적 인생관이 평안의 비결이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이는 죽을 듯 애를 끓이고, 심지어 목숨까지 버리지만 어떤 이는 감기 앓듯 잠시 앓다가도 가뿐히 이겨낸다. '관중규표(管中窺豹)'라는 말처럼 대롱으로 표범을 보면 한 점 무늬밖엔 볼 수가 없는 법. 나쁜 일'괴로운 일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광각(廣角) 렌즈로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남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는데 나 혼자 울울하다고 여겨질 때 이런 문구를 한 번 떠올려 보면 어떨까. "아무리 좋은 일에도 나쁜 일 한 가지가 따라오고/ 아무리 나쁜 일에도 좋은 일 한 가지가 따라오니까"(김흥숙 '그대를 부르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 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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