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관(譯官)은 조선시대에 중국'왜 등과의 외교에서 통역 업무를 맡았던 사역원(司譯院) 소속의 관리다. 사역원은 한학(漢學), 몽학(蒙學), 왜학(倭學), 여진학(女眞學)'청학(淸學) 등 외국어를 가르치며 역관을 양성했다. '조선 최대 갑부 역관'(이덕일 지음)이란 책은 역관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제작된 외국어 교재로 현존하는 최고의 중국어 학습서인 '노걸대'와 '박통사'가, 일본어 교재로는 '첩해신어'가 있다고 소개한다.
◇역관들은 외교관이면서 국제 무역상이었다. 특히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개무역을 통해 큰 이익을 취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등장하는 숙종 시대 역관 변승업은 요즘으로 말하면 천억대 이상의 재물을 가진 부자였다. 역관이 짧은 기간에 치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국내외 정세를 빨리 파악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인 신분에 불과했지만 역관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 역관 양성 기관 사역원에는 전'현직 역관들의 심사를 통과한 사람만이 입학할 수 있었다. 따라서 역관직은 세습될 수밖에 없었다. 역관은 개항 이후 새로운 시대 변화에도 가장 잘 적응한 사람들이다. 특히 인천에 설립된 대한제국의 관립 인천 외국어학교에는 대부분 역관의 자제들이 다녔다고 한다.
◇새로운 외국어의 습득은 선진 문물의 수용과 최신 정보의 취득을 의미한다. 조선조에 중국어와 일본어가 그 역할을 했다면 개항기 이후에는 영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어린 자녀들을 영어권 국가로 조기 유학을 떠나보내면서 희생을 감수하는 기러기 부모들이 줄을 잇고 영어 학습 열풍이 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국부 유출과 가정 파탄, 계층 양극화에 따른 소외감 등 조기 유학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영어마을이다. 영어마을은 영어로 인한 사회적 격차 해소를 명분으로 대구를 비롯한 전국 14개 지자체가 조성에 나서고 있다. 가히 영어마을 홍수 사태다. 하지만 교육부총리는 영어마을보다 원어민 교사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이 낫다며 영어마을은 이제 그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빚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영어마을에 입소할 수 없는 계층이 존재한다면 또 다른 양극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또 공교육 부실화도 걱정된다. 영어가 늘 문제고 화두다.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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