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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민항기 추락 4주년…"아물지 않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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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4년이 지났지만 이선정(43·여) 씨는 아직도 그날의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2002년 4월 15일 오전 11시 45분. 중국 국제항공공사 소속 CA-129편이 경남 김해시 지내동 돛대산 기슭에 추락한 바로 그날, 이 씨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세상의 전부였던 아들 민우를 잃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 씨의 절친한 친구와 그녀의 두 아이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이맘때만 되면 가슴이 방망이질쳐요. 나도 모르게 여행이 시작됐던 그해 4월 12일부터 하루하루 일정들을 곱씹게 되거든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다 보면 밤을 꼬박 새기 일쑤지요."

난생 처음 떠나는 중국 여행에 들떠 아들 민우는 소중히 모아놓은 저금통을 깼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 "엄마, 친구가 속이 미식거린대." 사고 직전 민우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였다. 사고 당시 아들의 나이는 고작 열 살. 그녀의 눈에는 어린 아들의 잔영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했다.

그녀는 사고 당시 정황을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놓았던 정신이 들자 자신이 의자 사이에 구겨져 있었다는 것. 비행기 잔해 속에서 기어나와 민우의 이름을 부르며 헤매던 그녀를 누군가가 산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걸로 마지막이었다. 잇따라 벌어진 2차 폭발과 화재. 당시 항공기에는 한국인 137명이 탑승하고 있었지만 이 가운데 129명이 사망했고 37명만이 살아 남았다. 특히 대구·경북지역 출신 승객 50여 명이 사망, 가장 많이 희생당했다.

사고 직후 유족들이 가장 거세게 요구한 것은 보상이 아닌 사고 항공사의 한국 노선 운항 중지였다. 그러나 건설교통부는 유족들의 호소를 "운항 중지는 중국에서 해야 한다."는 논리로 일축했다. 그 같은 조치를 취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

대한항공 소속 항공기의 괌 추락 사건 직후 대한항공의 괌 노선이 최종 사고 보고서가 나오기 이전까지 무기한 폐쇄된 것과는 천양지차였다.

보상 문제도 유족들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4년이 지난 지금, 유족들이 받은 보상금은 사망자 1인당 7천만 원이 전부. 대한항공 괌 사고의 1인당 평균 보상액은 2억 7천만 원 수준이었고 끝까지 미국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한 유족은 수십억 원을 받은 바 있다.

CA 여객기 사고 희생자 유족들은 괌사고와 비슷한 수준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이 씨의 동생 재욱(36) 씨는 "피해자 가족 대책위원회도 거의 와해됐고 지난 10일 6차 조정 심사가 열렸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는 상태"라며 "보상도 보상이지만 중국 측이 너무나 괘씸하다는 게 유가족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괌 사고의 경우 3년 만에 모든 보상 절차까지 끝났지만 자신들은 만 4년이 된 지금까지도 아무런 사과도,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유족들은 경남 창원 한마음병원에 안치돼 있는 확인 불가능한 시신의 잔해 역시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유골 보관비를 내지 못하겠다는 중국 측의 외면과 무성의 때문이다.

이재욱 씨는 "시신 파편을 수습하지 못하게 해 결국 추모탑에 안치시키지도 못했다."며 "게다가 추모탑에 '항공기 사고'라는 말을 남기면 추모탑 건립 비용을 내지 않겠다고 위협, 결국 이마저도 포기했다."고 했다.

이선정 씨는 2년 전 둘째 아이를 출산했지만 아직 민우의 사진을 치우지 못하고 있다. 남편은 여전히 민우에게 선물로 줬던 강아지 인형을 끌어안고 잔다고 했다.

이 씨는 정부와 세상의 무관심을 한탄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사고 직후 건교부 장관과 정치인들이 찾아와 '조속히 아픔이 아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직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며 이씨의 울분은 계속됐다.

"너무 지쳐있고 그동안 정부가 보여준 작태에 신물이 납니다. 이제는 정말 한국 사회에 환멸을 느낍니다. 사고 처리가 끝나면 정말 이민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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