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공천장사

1997년 우리나라에 IMF 구제금융 위기를 불러일으킨 결정적 계기중 하나는 기아자동차 부도였다. 전문가들은 기아차 경영이 악화됐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주주들로부터 관리권을 위임받은 경영진과 일부 노조간부들의 주주 이익 극대화보다 개인이나 조직 영달을 위한 이속 챙기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무리한 사업확장을 해도 관리인에 대한 견제장치가 없었다. 능력 위주 인물 발탁보다 친소관계에 따라 경쟁력 없는 인사를 등용시키고, 회사를 감시해야 할 노조 일부 간부들은 떡고물을 받아먹고 눈을 감다 보니 어느 날 재계 8위의 회사가 부도났고 결국 그 회사만 망한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거덜내고 말았다.

최근 타락양상으로 치닫는 지방선거를 보노라면 국민(주주)으로부터 대표권(경영권)을 위임받은 국회의원(전문경영인)의 후안무치와 탐욕, 오만이 또다시 우리나라 전반을 위기로 몰고 간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잔치판이 돼야 할 선거가 국회의원들의 공천 헌금 수수 등 이속 챙기기와 내 사람 심기 등으로 난장판이 되고 있다.

정당 공천을 허용하지 않던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 방식으로 선거법을 개정할 때만 해도 유급화에 따른 고급인력의 지방의회 진출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곱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게 일부 국회의원들의 공천 헌금 챙기기와 지방의원 하수인 만들기 작전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국민들은 분노를 느낀다.

특정 정당이 싹쓸이를 하는 지역에선 기초의원 1억, 광역의원 3억, 기초단체장 5억 원이라는 헌금 액수까지 거론되더니 서울에서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 출신 의원들의 수억 원대 공천 헌금 수수 사실 확인으로 설(說)이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대구에서도 한 국회의원이 공천과 관련돼 수억 원대의 뇌물을 받았다는 투서가 소속 정당 홈페이지에 게재되고, 전 비서관이 이게 사실임을 검찰과 선관위에서 털어놓아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해당 의원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지역민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심사로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고 있다.

돈으로 당선된 사람들이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되고 나서 할 일은 결국 본전을 찾는 일. 이권개입이나 뇌물수수, 인사청탁 같은 일들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년 동안 지방자치단체장 248명 가운데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78명이 선거부정과 비리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지방의원 가운데 사법처리 된 비율도 7%(293명)에 달한다.

지역에서 '공천장=당선증'이란 등식은 왜 성립했는가. 결국 유권자들이 특정 정당 싹쓸이를 해준 결과에서 비롯됐다. 경영진(국회의원과 단체장)들이 자리 유지에 대한 불안이 없는 상태에서 주주(국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기아차에서 잘 드러났다. 하지만 결과는 파탄이었다.

다가오는 5·31 지방선거에서도 부패하고 오만한 관리자에게 온갖 충성을 하고 나온 후보들을 심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쓰라린 위기를 맞게 되고 영영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최정암 사회1부 차장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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