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대구시교육과학연구원 지하 전시장. 150여 점에 달하는 대구시 학생과학발명품 경진대회 입상작들이 빽빽히 진열된 그 곳은 10대들의 아이디어 창고를 방불케 했다. 19점의 전국대회 출품작(대구시 대회 금상)들은 보안(?) 때문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공간절약 옷걸이', '말하는 시계 화분', '휴지통 압축기', '다리 사이에 땀 안나는 건강 이불' 등 이름만 봐도 궁금증이 도는 발명품들은 당연하다고 느꼈던 불편함에 통쾌한 반기를 들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기발한 착상들을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 초·중·고 세 명의 '에디슨'을 만났다.
"야외 체험학습 가 보면요, 돗자리를 펴도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불편했어요. 의자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들고 다니기 귀찮고..." 작품 설명을 부탁하자 제법 목소리가 또랑또랑하다. '의자로 변신하는 가방'으로 은상을 받은 정유진(9·학산초) 양. 정 양의 작품은 딱 초등학생 눈높이이라는 평이지만 아이답지 않은 실천력은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원리는 착상만큼이나 단순했다. 책가방 포켓 안에 스텐인레스로 된 접이식 다리를 붙인 것. 야외에 나갔을 때 접힌 다리를 풀어 세우면 의자 모양(일명 낚시터 의자)이 된다. 쿠션이 들어간 책가방 등 부분은 엉덩이를 걸치기에 딱 좋을 만큼 푹신푹신하다. 이동할 때는 다시 접어서 포켓 안에 넣고 지퍼를 채우면 깜쪽같다. 재료라고는 아버지 공장에서 가져온 스테인레스 다리와 찍찍이 테이프가 전부. 엄마 조재남(34) 씨는 "아토피 증세가 있는 동생을 위해 솜 인형 대신 공기를 넣은 인형을 만들기도 했다."며 "딸 애가 또래와 다른 점은 불편한 것을 적극적으로 바꿔보려는 태도"라고 말했다. 피아니스트가 꿈인 유진이는 요즘 '바퀴달린 쇼파'를 연구 중이라고 했다.
'구슬 新 윷놀이'로 은상을 탄 김동규(13·도원중 1년) 군은 '독서광'에 '메모광' 이었다. 중학생이 됐지만 잠시라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라는 것. 김 군이 과학 완구 부문에 낸 작품은 쇠구슬을 둥근 홈이 패인 판에 퉁겨 넣어 '도.개.걸.윷.모' 를 정하는 아이디어였다. 거기에다 플라스틱 윷판 위에 다시 판자를 얹으면 미니 '비석치기' 까지 할 수 있다. 김 군은 지난 해에도 날개 양 끝에 알루미늄 조각을 단 종이 비행기로 전국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다고 했다. 알루미늄을 단 비행기는 '중력의 한계' 를 벗어나 더 멀리 날았다. 김 군의 창의력 비결은 '발명 수첩' 활용하기. 기발한 생각이나 불편한 점이 생각나면 어디에서건 수첩을 펴 적는다. 이런 배경에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다닌 시 교육청 발명교실 도움이 컸다. 요즘엔 경북대 영재반(지구과학반)에 다니고 있다. 어머니 권경희(41·달서구 도원동) 씨는 "과제에 대한 집착력이 아주 커졌다."고 말했다.
'포사체와 자취궤도의 가시화 장치'로 학습용품 부문 은상을 수상한 서효운(17·대구과학고 2년) 군의 작품은 아이디어에서 제작까지 1년이 걸렸다. '포사체(砲射體)' 는 말 그대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물체를 칭하는데, 그 낙하운동의 좌표를 잡아 중력의 힘을 수식화한 것이다. 교과서에는 관련 사진이 실려있지만 방정식으로만 간접적인 입증이 가능했다. 서 군은 교실에서 직접 육안으로 관찰해 보고 싶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검정색 사각통에서 발사되는 물줄기에 점멸식 빛을 쏘아 물방울을 점으로 끊어줌으로써 교과서 사진과 똑 같은 장면을 만들어 낸 것.
서 군의 발명 스토리도 초등학교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벌써 건전지 교체시기를 알려주는 알람장치를 만든 것. 건전지가 오래될 수록 저항 값이 커지는 현상에 착안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졸업때까지 4년 간 경북대 영재반(생물반)에 다녔다는 서 군은 꾸준한 노력이 창의력을 키우는 비결이라고 했다. "분야를 안 가리고 이해력이 높은 진짜 영재가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창의력은 독서나 수업을 통해 얻은 배경 지식이 없이는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사진 이상철 기자 finder@msnet.co.kr
▶ 발명 교실 어디 있나?
대구시 교육청은 7개 발명교실과 1개의 발명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남산초, 달성초, 성서초, 화원초, 범일중, 대명중, 강북중이 지역교육청 별로 중심 발명교실을 열고 있으며, 교육과학연구원에 발명교육센터를 설치·운영중이다. 또 발명교실에는 초.중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여러가지의 강좌를 개설해 놓고 있다. 전국학생과학발명품 경진대회에서 8차례의 대통령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등 대구의 발명 교육은 전국에서도 명성이 높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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