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우리나라의 목표는 '보릿고개 탈피'였다. 이에 따라 새마을 운동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마을마다 농업용수 개발이나 도수로 설치 등 치수사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경북의 대표적인 치수사업은 청송 부동면 지리 직강공사. AID 차관으로 1969~71년까지 3년에 걸쳐 이뤄진 이 사업은 청송 부동면 지리와 청송읍 송생리를 흐르는 낙동강 상류 용전천의 물길을 바로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연 수천대의 덤프트럭과 불도저, 포크레인 등이 동원돼 '자라목'으로 불렸던 산을 잘라 그 곳으로 물길을 만들고 우회하던 하천을 모두 과수원으로 조성한 것. 이 사업으로 모두 18만평(60ha)의 마평과수단지가 생겼는데 바로 오늘날 '청송 꿀사과'의 본고장이다.
당시 경산에서 사과농사를 짓다가 1972년 마평과수단지로 들어온 허진권(56·청송 부동면 지리) 씨는 "군으로부터 평당 250원에 7천여 평을 분양 받아 하천부지를 과수원으로 만들기 위해 3년동안 남자는 3천 원, 여자는 2천 원의 인건비를 주고 사람을 사 돌을 고르고 사과나무를 심었다."고 말했다. 이때 일꾼들은 새참으로 봉지당 10원하던 라면땅과 건빵을 3년동안 먹었다고 회상했다. 1974년도에 들어온 임관우(63) 씨는 "하천부지 매입자금은 농협 청송군지부로부터 이자 8%정도로 5년 거치, 1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200만 원을 융자받아 조달했다."고 말했다.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 논면적의 절반가량이 천수답이거나 수리불안전답었으나 1970년에는 그 비율이 25%로 낮아졌다가 1980년대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새마을사업으로 콘크리트 도수로 개설이나 못을 축조하는 등 관개를 완전히 개선한 결과이다. 1970년대 농업부문에서 가장 많은 정부자금이 투자된 곳은 바로 수자원개발과 한해대책이다. 당시 정부는 평야지대의 논들에는 저수지, 경사진 곳이나 천수답에는 관정을 뚫어 지하수를 끌어올려 벼농사를 짓도록 했다. 60년대만 해도 지하 깊은 곳까지 굴착하는 기계가 없어 고작 지하 8m까지만 관정을 뚫을 수밖에 없었으나 70년대에는 관정을 깊게 파는 기계가 도입되면서 대부분 지역에서 지하수를 끌어올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60년대 후반~80년대까지 굴착한 관정이 전국에서 약 15만개(1개 면당 100개 가량)로 집계된 것만 봐도 치수사업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 지를 알 수 있다.
1974년 무렵의 청도 이서면 구라리 마을. 장마철이면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도랑에 토사가 쌓여 물난리를 겪던 75가구 주민들은 치수사업에 나섰다. 주민들이 직접 도수관을 만들어 한달 보름동안 비지땀을 흘려 길이 150m에 달하는 도수로 공사를 끝냈다. 이 마을 반상환(71) 씨는 "요즘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지. 농사일 제쳐두고 무조건 해야만 하는 일인 줄 알았으니까. 그때 쌓은 블록이 아직도 멀쩡하니까 공사는 참 여물게 했다."며 "밀국수 한 그릇과 막걸리 한사발로 허기를 채웠지. 다른 마을은 몰라도, 우리는 준공뒤 기진맥진해 동네잔치도 열지 못했다."고 말했다.
농촌지역의 또 다른 치수사업의 하나는 우물을 간이상수도로 바꾸는 식수공급개선이다. 당시 비위생적인 데다 농촌 주부들이 물동이 등으로 길어나르느라 시간 및 노동력 낭비가 많았던 우물을 상수도시설로 바꾸는 획기적인 사업이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주부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모습이 자취를 감췄고, 산간지대 마을마다 계곡의 맑은 물을 저수탱크로 끌어올린 뒤 개별농가까지 파이프로 연결, 물을 보내는 시스템이 도입됐다. 간이상수도 시설이 불가능한 지역에서는 기존 우물을 더욱 더 깊이 파, 파이프로 농가까지 연결, 부엌에 설치된 양수기 가동으로 식수를 얻는 방법을 채택했다.
1973년 10월쯤 영덕 노물리 주민들은 그동안 모아둔 공동경비에다 군지원금을 합해 마을 입구 50m 높이 언덕에 간이상수도 물탱크를 설치했다. 현재 노물리 어촌회관 자리에 있었던 공동우물의 물을 끌어 올려 상수도시설에 모아 다시 각 가정으로 물을 공급하는 급수방식을 택한 것. 상수도시설 부역 때는 누구 하나 불만 없이 남자들은 삽과 곡갱이를 들었으며, 여자들은 새참으로 돕고 나서 20여평(깊이 3m) 규모의 시멘트조 물탱크시설을 끝내고 공동우물에 파이프를 묻고 전기모터를 이용, 각 가정까지 수도관을 연결했다. 수도꼭지를 통해 물이 '콸콸' 쏟아지자 주민들은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이춘달(57) 어촌계장은 "해가 뜨자 마자 공사가 시작되면 집집마다 작업도구를 들고 모여 구슬땀을 흘린 결과 군 상수도가 들어오기전까지 23년동안 물걱정 없이 살았다."며 "상수도시설이 완공되고 집에서 수도꼭지를 틀자마자 쏟아지는 물을 보고 눈물이 핑돌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노진규·황재성·이상원·김경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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