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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워털루 전투 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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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6월 18일 벨기에 남동쪽의 워털루 남방의 교외. 나폴레옹이 이끄는 12만 5천 명의 프랑스군이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을 주축으로 한 벨기에·네덜란드 연합군 9만 5천 명과 교전을 벌였다.

그러나 블뤼허가 이끄는 12만 명의 프로이센군도 힘을 보탠 연합군에 프랑스군은 최정예 제국근위대의 75%에 달하는 1만 명을 포함한 병력 5만을 잃었다. 이 전투가 끝나고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돼 6년을 보내다 숨을 거뒀다.

나폴레옹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일이었지만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군주제를 옹호하는 완고한 복고체제가 다시 유럽 전역에 퍼지는 결과를 낳았다. 역사를 장식한 많은 전투가 그랬듯이 프랑스군의 패배도 지휘관의 판단 착오가 크게 작용했다.

네이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은 초반에 연합군의 기선을 제압하며 승기를 잡는 듯했다. 그러나 네이는 방어진을 단단히 구축한 연합군을 상대로 기병으로만 공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돌진 과정에서 버려진 연합군의 대포를 못 쓰게 하지도 않았다.

이 포들은 프랑스군이 후퇴했을 때 바로 공격도구로 사용됐다. ▲1936년 프랑스 인민전선내각, 주 40시간 노동제 가결 ▲1999년 60년대 한국 여자농구 스타 박신자, 미국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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