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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서] 붉은악마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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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가슴 설렘이다. 그것은 마음먹은 날 부풀어 오르기 시작해서 계획이 완성되는 날 정점을 통과하여 떠나기 직전에 터져버리는 풍선이다. 여행의 목적은 사실상 떠나기 전에 완성된다. 여행의 과정을 통해 그것을 확인하며 그래서 더욱 풍성해진 채로 귀향하는 것이다.

여행하는 것은 고통의 전진이며 이미 실망과 슬픔을 잉태한 낯선 곳의 동경이다. 매번 고단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다시 길을 나서는 것은 가슴 설렘 때문이다. 그는 헤진 옷을 깁게 하고, 까진 무릎에 붕대를 감게 하고, 심호흡으로 저 앞을 응시하게 한다. 천 번을 되돌아와도 다시 집을 나서게 한다. 가슴 설렘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경이요 그 속에 서 있는 자신에 대한 사랑의 떨림이다. 생명의 고동소리다. 매일 아침 그 풍선이 부풀어오르는 꿈이 없다면 어찌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붉은악마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이란 인격이 커다란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거리마다 붉은 열정과 환희와 황홀경의 꽃이 불처럼 피어날 것이다. 섬광처럼 예고 없이 찾아온 2002년의 폭발이 우리를 다시 가슴 설레게 한다. 강바닥의 진흙처럼 5천 년을 눌러붙은 차가운 돌덩어리 한(恨)을 녹여 풀어낸 민족의 집단적 가슴 설렘 그것이다. 그 순간 백척간두 외길 낭떠러지에 손끝으로 홀로 매달려 있어도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대한민국과 내가 온전히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이 시작되면 풍선은 터지게 마련이다. 설렘이란 봉우리가 터져서 꽃이 된다. 붉은 열꽃이 활화산처럼 피어날 때 우리는 귀향을 준비해야 한다. 저마다 등에 멘 배낭에 무언가를 가득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붉은악마는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에 피는 열정과 신바람의 꽃이다. 속에 이미 가을을, 열매를 안고 있는 더 깊은 설렘의 꽃이다. 2002년이 가르쳐 준 붉은악마의 진실이다. 가슴 설렘은 동일하지 않은 반복이다. 여행은 늘 집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같은 곳을 같은 방법, 같은 목적으로 가지 않는다.

토고전 승리로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붉은악마들이여! 2002년의 환희를 스스로에게 이야기 하자. 그리고 2006년 다른 이야기를 가득 담고 돌아가자. 그래서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진정 가슴 설레게 하자. 붉은 악마는 끝나지 않는 여행의 전설이 될 것이다.

황보 진호 하늘북 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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