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예배를 마치고 나와 주차장에 밀려 있는 차들을 정리하는 바쁜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어느새 왔는지 남루한 옷을 입은 40대 후반의 남자가 곁에 다가와 "목사님 라면 한개 먹을 돈 좀 주십쇼"라고 구걸을 했다.
'내가 왜 목사님으로 보였을까'라는 기분 나쁘지 않은 느낌과 함께 귀찮은 사람을 또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하면 이 자리를 모면할까 하며 망설였다. 모르는체 하고 자리를 떠날까 하다가 무심히 말을 던졌다.
"요즘 하루만 일해도 몇 일 먹을 수 있는 돈을 버는데 보기에 건강하신 분이 왜 구걸을 하십니까." 이 질문이 그에게는 오히려 희망을 가져다 준 것 같았다. 모르는체 하고 지나치는 무관심에서 관심을 가진 말 한마디가 그의 얼굴에 화색을 띄게 했다.
그는 여러 가지 병이 있어서 일을 할 수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때까지 그의 얼굴은 진실한 표정이 아니었다. 몇 푼의 돈을 얻기 위한 궁리에 가득 차 있었다. 한동안 눈을 마주친 뒤에 나는 제법 심각한 말을 던졌다.
"오늘의 양식은 제가 도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과 모래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내일과 모래는..." 내 말을 따라 웅얼거리며 그는 갑자기 숙연해졌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죠. 그게 문젭니다"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순간 고뇌하는 모습의 진실함이 엿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모은 그의 두 손에 푸른색 지폐 한 장을 쥐어 주었다.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 온 그는 기쁨에 넘치는 목소리로 "너무 많이 주셨는데요"라며 뒷걸음으로 물러 나갔다. XX곰탕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골목 사이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 쉬었다.
'저 사람과 내가 무엇이 다른가. 내가 무엇을 잘 하였기에 나는 주는 입장이 되고 저 사람은 구걸하는 입장이 되었는가. 진정 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무엇일까.'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혼란케 했다.
그 때 신약성서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앉은뱅이로 구걸하는 자와 베드로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돈 한 푼을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베드로는 '금과 은은 나에게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게 하노라'하며 그 앉은뱅이를 일으켜 걷고 뛰게 하였다고 적혀 있다.
참으로 멋지다. 그 앉은뱅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돈 한두 푼이 아니고 걸을 수 있는 것이었다. 앉은뱅이는 후일을 생각 못하고 현실에만 집착해 있었지만 베드로는 영원한 것을 보여준 것이다.
같은 3분간의 대화이지만 나와 베드로의 대답은 하늘과 땅 차이다. 돈 한 푼을 뻐기며 주었던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나도 베드로처럼 정말 멋진 것을 줄 수 없을까?
이영기(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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