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한점 없는 시골 들녘에서 맞는 8월 초 가마솥 더위는 '자외선 사우나'라 표현해도 흡족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몸의 모든 땀구멍에서 뜨거운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제작진 나눠준 밀짚 모자와 수건으로 버티는 것도 고작 몇 분. 그늘로 피신하지 않는 한 '땀 목욕'은 계속됐다.
3일 경북 예천군 예천읍 용문면 선동. 톱스타 이병헌과 떠오르는 스타 수애 주연의 멜로 영화 '여름 이야기'(감독 조근식, 제작 KM컬쳐)가 여름을 온몸으로 안으며 촬영에 한창이었다.
50가구, 70여 명이 사는 이 작은 시골 마을은 '여름 이야기' 전체 촬영분량의 70%가 진행되는 곳. 1969년 서울서 농촌봉사활동(농활)을 내려온 대학생 윤석영(이병헌 분)이 마을 처녀 서정인(수애)을 만나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을 엮어가는 무대다. 이들의 한여름 태양 같은 사랑은 그러나 격변의 시대에 휩쓸리며 빛을 잃어간다. 그리고 기나긴 그리움의 시간이 이어진다.
'여름 이야기'는 가슴 속에 묻어 둔 첫사랑을 찾아나서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품행제로'의 조근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현재 촬영이 65% 가량 진행됐으며 10월말 개봉 예정이다.
예천에서의 두달 남짓한 촬영으로 새까맣게 탄 이병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백옥 같은 피부를 유지하고 있는 수애, 그리고 조근식 감독은 '여름 이야기'에 대해 "다양한 감정이 내재된, 진실성을 가진 멜로영화"라고 말했다.
특히 조근식 감독은 "여태껏 봐온 배우 이병헌과 수애의 모습 보다 훨씬 사랑스럽고 친근한 모습을 보게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음은 역시 뙤약볕 아래에서 진행된 이들과의 일문일답.
--무더위 속에서 촬영하는 소감이 어떤가.
▲미리 취재진에게 경고하고 싶었다. 그런 밀짚 모자를 쓰고 있어도 2시간만 지나면 나처럼 까맣게 탄다.(웃음, 이병헌, 이하 이)
▲더위에 많이 익숙하다. 바로 직전 영화('결혼 원정기')는 이보다 더한 더위 속에서 촬영했다. 그나마 오늘은 좀 괜찮은 편이다. 어제, 그제는 더 더웠다.(수애, 이하 수)
▲너무 더워서 죽을 것 같고, 그래서 찍기 싫은 데 찍고 있다.(웃음, 조근식, 이하 조)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언제나 그렇듯 작품을 선택하는 명확한 이유를 딱 꼬집어서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그저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의 느낌에 따라 결정하게 된다. 이 영화 역시 그 느낌에 반해서 선택했다.(이)
▲70년대의 시대상이 되게 궁금했는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정서적으로 이해를 많이 하게 됐다. 그 시대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고, 그런만큼 느낌도 좋아서 선택했다.(수)
--석영이 'TV는 사랑을 싣고' 형식의 프로그램을 통해 옛 사랑 정인을 찾아나선다. 뒤늦게 첫사랑을 찾아나서는 석영의 심리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농활을 내려와서 만난 여자와의 시간이 석영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다시는 올 수 없는 시간이다. 짧고 강렬한 한달 남짓한 사랑을 했고, 그 이후는 평생에 걸쳐 이별하는 과정이다. 그 여인을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과정이 대단히 가슴 아프고 힘들다. 남자는 누군가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상자 속에 여인을 담고 있다. 겉으로는 그녀를 잊은 듯 하지만 마음 속에는 잔상이 남아있다. 그런 와중에 TV에서 그 잔상을 건드리고, 남자는 회상을 통해 그 시절 사랑의 강렬함을 되새기고 싶어하는 것이다. 상투적일 수도 있는데, 짧은 기간 강렬했던 사랑의 기억을 찾는 심리다.(이)
--극중에서 정인은 음치로 설정돼 있다. 원래는 노래를 잘하지 않나.
▲아니다. 원래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춘다. 그런데다 촬영에 앞서 연습할 때도 엇박자로 연습해 막상 슛을 들어가니 좀 잘하려 해도 안되더라.(웃음, 수)
--두 배우는 각자 상대 배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처음에 이병헌 선배가 남자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좋았다. '이병헌 선배와 멜로를 할 수 있구나', '많이 배울 수 있겠구나' 싶었다. 두달 넘게 촬영하면서 진짜 많이 배웠다. 선배는 모든 것이 연기 같다. 리허설을 할 때도 내가 하는 본 연기보다 더 잘한다.(수)
▲캐릭터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수애 씨를 떠올렸다. 간혹 모니터를 보면 진짜 정인인 듯 느껴진다. 수애 씨 외 딴 사람이 연기한다는 상상은 할 수 없다. 여배우들마다 장점이 다 있지만, 수애 씨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하고 있다. 후배지만 자기 색깔이 분명하다는 점은 정말 대단하다.(이)
--이병헌 씨는 한류 스타이지만 작품 고르는 스타일은 한류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류를 따지면 1~2년 전에 드라마를 했어햐 했다. 홍콩 느와르가 아시아에서 정상을 달릴 때 홍콩에서는 무수히 많은 느와르의 '재탕'이 이뤄졌다. 그러다보니 식상해지고 질도 떨어졌다. 우리는 늘 보여지는 사람들이고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에만 맞춰, 그 입맛에만 맞춰 작품 활동을 하게 되면 그것은 단명하는 지름길인 것 같다. 너무 나 자신을 믿는 것 같지만 내가 이 시나리오를 보고 느낀 점을 다른 사람들도 같이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수애 씨는 촬영장에서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한다고 들었다. 힘들지 않나. 체력 유지 비결이 뭔가.
▲증조할머니부터 계시는 대가족에서 성장하다보니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사실 그런 점이 촬영하면서는 불편하기도 하다. 새벽까지 촬영하면 좀 늦게 일어나도 되는데 어김없이 오전 6시에 일어나게 된다.(웃음) 또 어려서 육상부였기 때문에 체력은 남들보다 좋다.(수)
▲참고로 수애 씨는 요즘은 할머니 보다도 일찍 일어난다.(웃음, 이)
--30년 전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우리가 갖고 있는 평범한 마음이 특별히 시대 배경이 다르다고 달라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들에게도 69년도의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하지 않는다.(조)
▲사랑이라는 감정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표현 방식도 다르지 않다.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수)
▲특별히 그 시대의 사랑법이라기 보다는 좀 더 순수하고 설레임이 있는, 그런 감성이 아닌가 싶다.(이)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시간이 너무 짧다.
▲누군가를 좋아하는데는 한달이 아니라 단 5분, 30초가 걸릴 수도 있다. 한달이면 너무나 많은 사건과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물론 시나리오에 그 단서도 있지만 찍으면서도 계속 배우들과 얘기를 하며 둘의 사랑에 대한 단서를 찾고 있다. 그게 어떤 무늬가 될 지는 나도 궁금하다. (조)
▲왜 사랑에 빠지게 됐는지를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석영은 주변인처럼 겉도는 인물이다. 영혼이 자유로운 인물인데, 굉장히 다양한 성격, 스펙트럼이 넓은 인물이다. 그런 석영이 출발은 호기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정인도 마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고 느끼는 시점이 있다. 그 순간부터 석영의 감정이 진지해진다.(이)
--다른 멜로와 어떤 차별성을 갖나.
▲차별성을 갖고 있다고 좋은 영화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굳이 이 영화의 좋은 점이라 생각되는 것은 대충의 스토리를 들으면 따뜻하고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로만 여겨지는데, 알고보면 참 다양한 감정이 내재된 영화라는 점이다. 강렬한 감정, 강렬한 슬픔이 담겨 있는 영화다.(이)
▲같은 생각이다. 또 차별화보다는 진실성을 갖고 연기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수)
▲멋있고 예쁜 배우랑 작품을 해보는 게 소원이었다. '품행제로' 때는 그게 부족했다.(웃음) 이번 영화에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점은 여태껏 봐온 이병헌 씨, 수애 씨의 모습보다 더 멋지고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함께 작업해보니 두 배우 모두 소탈하고 인간적이고 친근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 옆에 있는 사람 같은, 사랑스럽고 친근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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