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리스의 시지프스의 신화를 알고 있다. 신을 거역했다는 죄과(罪過)로 그는 언제나 무거운 바위를 굴려 올려야만 했다. 그러나 산마루에까지 이르면 그 바위는 이내 굴러 떨어지고 만다.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영겁의 형벌! 끔찍하기 짝이 없다.
까뮈는 우리 인간의 삶이 바로 이 시지프스의 작업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현재 사람들은 이러한 고달픈 작업을 계속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의미한 줄 알면서도 그저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는 의식, 그 본능적인 힘, 그 의지와 실존적 삶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우리의 행위가 결국 허무할 수밖에 없으며 끝내 절망에서 구제될 수 없으면서도 힘껏 살아야만 하는 역설적 존재에 불과한 것인가?
서구인들이 이처럼 회의하며 고민하고 살고 있지만, 우리의 선현들은 일찍이 참으로 훌륭한 삶의 지혜를 찾았었고 또 생활화해 왔었다. 실존적 불안과 절망을 초극할 힘을 마음에서 발견하고 살아왔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서구인들은 시지프스가 굴려 올린 바위에서 귀한 옥돌(물질적 가치가 아닌 정신적 가치를 지닌)을 하나씩 쌓아 올리지 못하였지만, 우리 조상들의 흔한 설화 속에는 도깨비 방망이와 옥구슬과 용궁 세계 등이 늘 있었다. 그 비현실적 존재물은 전부 우리 마음의 창조물이었다. 마음 깊숙이 하나의 소중한 의미를 간직해 놓고 그 힘든 노역의 삶을 살아왔으리라.
이 마음의 창조물이 없다면 결국 우리의 삶은 무미건조하고 허무할 수밖에 없다. 지난 봄과 여름, 우리 학생들의 고된 노력도, 풍성한 가을의 수확도 어쩌면 우리와 무관할 수도 있으며 또한 거의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하는 공부, 단어 하나, 문제 하나, 논리 하나가 무슨 참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 줄 수 있을까? 우리는 고전 작품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끊임없이 절망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결국 그 자신은 그 자신이 키워온 마음밖에 없음을 깨닫고 만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했노라 여겨 두고 그것을 소중히 할 수밖에 없다. 그 소중한 마음이야말로 참된 의미를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2학기도 개학되고, 결실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봄과 여름 피땀 흘려 노력한 흔적이 드러나는 때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결과가 자신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마음을 소중하게 채우도록 힘써야 한다. 평소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마음을 다듬어 온 사람은 그 마음에 담담한 미소가 깃들 것이요, 그 고된 과정이나 결과가 자신의 마음에 무가치한 것으로 자리할 때, 스스로 허무의 산에서 떨어지는 바위와 같은 존재가 될 따름인 것이다.
오늘 하루, 이 한 계절과 한 해, 한평생, 모든 시점마다, 고통스런 시지프스의 바위를 올릴 때마다, 마음 깊이 소중한 신화의 구슬 하나씩 쌓아가면 어떨까.
전인득(포항제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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