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내게 대구는 내 마음이 늘 가 닿는 곳이었다. 비 오는 날이나 흐린 날에는 산 넘어 30리 밖에서 들려오는 먼 기적(汽笛)소리가 기적(奇蹟)처럼 들려왔다.
아련한 그 소리는 약목과 왜관을 지나 대구로 가는 기차가 울리는 소리였다. 그때마다 어린 나는 눈물짓곤 했다. 아직은 갈 수 없는,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상향에 대한 본원적인 향수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의 종착역은 언제나 대구였다.
고향에선 백 리나 떨어진 곳에 대구가 있었지만, 그 당시 백리는 걸어서 꼬박 하루가 걸리는 먼 길이었다. 요즘처럼 한 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강을 건너야 하고 다시 한 시간 이상 걸어 나와, 하루 두어 차례 다니는 완행버스를 기다렸다가 타야 했다. 그렇지만 대구는 늘 내 마음 속에 지척이었다. 그 대구는 원초적 그리움, 원초적 고향이 되어 존재했다.
대구는 내 마음의 수도이고 내 정신의 본향이다. 그래서 나는 대구에 산다. 고향을 지킨다고 하는데, 우리가 고향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고향이 우리를 지켜주기 때문에 고향에 사는 것이다.
대구는 내가 지켜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나를, 우리를 지켜주는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나는 처음부터 서울로 가려하지 않았다. 못 간 것이 아니라 안 간 것이다. 서울은 내게는 변방과 같은 곳이다. 내 마음의 중심, 내 삶의 원천은 여전히 대구인 것이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마음의 고향인 대구로 나오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생활도 대구에서 했다. 푸른 제복 속의 생활은 대구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때는 대구와 경북이 분리되지 않아 하나로 존재했다.
도청소재지가 바로 대구였다. 80년대 들어 분리되면서 대구와 경북은 별개로 존재하고 기능했다. 지금 다시 통합이 논의되고 있지만 그건 행정조직과 제도상의 일일 뿐, 어떻게 대구 따로, 경북 따로이겠는가? 우리는 한 번도 따로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대구는 여전히 경북의 대구, 나아가 경상도의 대구인 것이다.
대구에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경주가 있다. 대구가 경상도 사람의 고향이라면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는 모든 한국인의 정신적 고향이고 원초적 본향이다. 천년의 역사가 간직된 도시이자, 우리의 옛 수도이고 찬란한 문화 중심지였다.
그런가하면, 근대와 현대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도시가 대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대구·경북이야말로 오랫동안 역사의 현장이자 중심이었다.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없다. 대구의 정신, 대구 얼 찾기 운동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역동적인 역사의 현장이었던 대구가 어떻게 인천이나 부산 같은 항구도시나 다른 내륙도시에 비하겠는가? 천년고도 경주, 유교문화의 중심인 안동, 현대사에 각인된 대구의 위치로 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다른 지역에 견줄 수 있으랴!
대구는 일찍부터 문학의 도시였다. 신라 향가에서부터 삼국유사로 이어져 오는 한국문학의 황금 광맥은 우리 대구에 있다. 그 저력으로 일제시대와 해방이후엔 문단의 구심이 되었고, 6.25 전쟁 동안은 문학의 도읍지로 그 뿌리와 향기를 지키고 간직해왔다.
그런 대구에 문학관이 없다. 빛나는 전통과 대구의 얼과 향기를 담아내고 전파할 문학관 말이다. 이건 우리 모두의 직무유기이다. 전국 곳곳에는 수많은 문학관이나 시인·작가들의 기념관이 있다.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배출된 곳이지만 우리는 아직 그 누구의 문학관도 갖지 못했다. 인구 500만의 중심에, 인구 250만이 직접 거주하는 도시에 문학관 하나 없다는 건 정말 외부인에게는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 우리는 문화적인 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학은 있는데 문학관은 없는 곳이 대구 말고 또 있겠는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아직 기초공사도 못하고 있다. 이제 차근차근 주춧돌부터 놓자. 자료를 발굴하고 보존하며 시민들이 이용하도록 하고 후손에게 자산으로 물려주어야 한다.
대구문학관 뿐만 아니라 대구를 빛낸 문인들인 상화나 빙허 문학관도 세우자. 그 문학관에서 상화문학제도 열고 빙허문학제도 열어 대구가 명실상부한 문학과 예술의 도시로 자리매김 되도록 하자.
박방희(시인·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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