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부-전공노는 왜 싸우나?…'파업권' 불인정이 불씨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사상 처음으로 자기네들끼리 격렬한 몸싸움을 벌여야 했던 이유는 뭘까.

22일 대구를 비롯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행정자치부의 행정대집행 권고에 따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사무실을 강제 폐쇄한 배경에는 '공무원노조법'에 대한 정부와 전공노의 끝없는 갈등이 깔려 있다.

정부는 올 1월 공무원노조법을 발효했지만 전공노는 "노동3권을 제한하는 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의 합법노조 설립신고 요구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불법노조'로 남아 있는 것.

전공노를 탈퇴해 합법노조로 전환하는 산하조직이 잇따르는 등 정부와 지자체들의 강경 조치가 일단 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전공노와 정부 간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란 지적이다. 조합원만 10만 명이 넘는 전공노가 "민주노총 등 진보노동계와 연합해 정부에 계속 맞서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

◆전공노는?

공무원노조의 역사는 '공무원 직장협의회법'이 국회를 통과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직장협의회법 제정 2년 후 대구에는 시 및 구·군청 6급 공무원들이 중심이 돼 조직한 달구벌 공무원직장협의회(달공연)가 등장했고, 이듬해 조직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연맹(공노련)의 한 주축이 된 것.

하지만 공노련의 온건노선에 반발한 노조원들은 채 1년도 안 돼 무더기 탈퇴를 선언, 새 노조를 만들었다. 바로 전공노의 태동. 공노련 소속 대구 노조원들도 전공노로 대거 이탈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 현재 대구의 전공노 조직은 북구를 제외한 대구 7개 구청과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 등 8개 지부. 대구 조합원만 3천810명에 영천, 포항, 경주, 상주, 김천, 안동, 고령 등 경북 7개 지자체의 조합원 6천280명을 더하면 모두 1만 명이 넘는다.

전공노는 대구·경북을 포함해 16개 시·도 전체에 걸쳐 조합원 10만여 명을 확보, 국내 최대 단일노조로 급부상했다.

◆정부 vs 전공노

정부와 전공노는 2002년 전공노 출범부터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는 공무원노조법 때문. 전공노는 2003년 연가 투쟁과 2004년 총파업을 강행하며 정부안에 맞섰지만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파업권'을 줄 수 없다."며 올 1월 28일 공무원노조법 발효를 강행한 것.

대구 지자체들은 "정부는 공무원노조법 발효 이후 전공노의 합법노조 신고를 권고했지만 전공노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오히려 전공노는 민주노총 가입, '을지훈련' 폐지, 공무원연금법 개악 반대 등 잇단 단체행동을 추진하면서 정부의 미움을 샀고, 끝내 행정자치부의 사무실 강제 폐쇄 조치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노조설립을 할 수 있는 전공노가 스스로 불법노조를 고집하는 한 어떤 대화에도 응할 수 없다는 것. 또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전공노를 인정하겠다'는 인정서약을 쓴 시장, 군수만 22명에 이르고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에 아랑곳없이 공개적으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등 전공노가 정치세력화하고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로 풀이되고 있다.

22일 사무실 강제 폐쇄를 비롯한 정부의 '채찍' 정책은 일단 효과를 거두고 있다. 대구 북구를 비롯해 광주시 교육청, 경기도청, 경남도청, 전남 완도군 등이 잇따라 전공노를 탈퇴해 합법노조로 전환한 것.

이에 대해 대구시 한 간부는 "안정된 급여와 확실한 신분보장을 누리는 공무원들이 노조활동을 통해 파업 투쟁을 벌인다면 이를 지켜보는 국민이 과연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국민정서상 전공노가 요구하는 파업권을 정부가 인정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전공노,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전공노는 사무실 강제 폐쇄를 단행한 정부와 일선 지자체들에 여전히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공무원노조법의 근본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노조만 탄압하는 한 민주노총과 연계한 총력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

전공노는 올 초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정부에 보내온 권고안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정부·노동계·경영계가 모두 참여하는 ILO는 공무원 단결권과 단체행동권(파업권)을 최대한 보장해 줄 것을 우리 정부에 정식 요청했다. 공무원노조법은 파업 등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고 단체교섭 범위도 제한적이라는 것.

전공노 대구·경북본부는 "정책 결정이나 예산 등에 관련된 부분은 교섭 대상이 아니고, 6급 이하 공무원만 노조가입이 가능해 전체의 절반이 넘는 공무원들이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며 "공무원노조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공무원 노조 탄압 국가'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공노를 지지하는 공무원들은 "조합원이 10만 명에 이르는 전공노가 사무실 강제 폐쇄로 한번에 무너지겠느냐."며 "정부도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거들었다. 대구 중구청 한 공무원은 "공무원들이 왜 전공노에 대거 가입했겠느냐. 권위주의와 낙하산 인사가 난무하는 공직시스템에 대한 환멸 때문"이라며 "정부는 전공노 조직을 부정하기 전에 공무원 인사와 조직 운영 방식에 대한 총체적 개선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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