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후학으로 서애 유성룡과 더불어 영남사림파를 대표하는 학봉(鶴峯) 김성일 종택(종손 김시인·90·안동시 서후면 금계마을) 의성 김씨 15대손 차종손 김종길(66)·이점숙(67)씨 부부. 추석을 이틀 앞둔 4일, 김 씨 부부의 추석 차례상 장보기에 따라갔다.
▷어물전에서=오전 10시, 재래시장인 안동 중앙 신시장. 종부 이 씨가 재래시장을 찾는 이유는 제품의 유통 기간이 짧아 신선하고 값이 싼 데다 단골이 많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어물전에 들러 방어를 찾았다. 작은 것 두 마리를 사려다 1m는 족히 넘어보이는 물 좋은 방어(7만 원)가 눈에 띄자, 한 마리로 낙찰을 본다. 이 씨가 구입하기 전에 생산지와 생선의 신선도를 꼼꼼하게 살펴 크고 싱싱한 놈만 고른다. 흠집이 없는 깨끗한 놈을 찾기 때문에 자연히 가격보다 물건에 먼저 관심이 간다.
이어 여느 집안의 차례상에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고등어 7손(8만 4천 원)을 고르고, 조기 13마리(6만 5천 원), 돔배기(6만 원), 마른 명태(2만 원)와 함께 굴젓(1만 원)도 샀다. 의성 김씨 종가에서는 차례상에 방어와 고등어, 돔배기, 조기, 쇠고기, 닭 등 모든 고기를 날 것으로 올리지만 4, 5년 전부터 절반 정도 익혀 올린다고 했다.
▷채소와 고기 가게에서=우엉(1만 5천 원)과 콩나물(3천 원), 호박(1천 원), 오이(2천 원), 그리고 잘 생긴 무(4천500원)를 골랐다. 나머지 채소는 텃밭에서 키운 것과 이웃 일가가 차례상에 쓰라고 갖다준 것을 쓴다. 부인의 계산이 끝나기가 무섭게 종손 김 씨가 제수를 건네받는다. "오래 됐어요. 자연스럽죠."라며 빙그레 웃는다.
정육점에서는 산적거리용 쇠고기 4근(4만 5천 원)과 꼬지용 쇠고기 2근(2만 3천 원)을 샀다. 닭고기는 이미 가장 크고 싱싱한 것으로 6마리(3만 원)를 사둔 터였다. 어물전에 생선 손질 부탁한 것을 찾으러 가다 양곡점에 들러 감주와 안동식해를 만들 엿기름용인 겉보리 한 말(2만 원)과 손님께 내놓을 묵을 만들 요량으로 도토리 24kg(4만 3천200원)을 샀다.
어물전 주인이 영수증에 적어 놓은 물건 값은 29만 7천 원. 그러나 김 씨가 계산해보니 29만 9천 원으로, 2천 원이 빠져 있었다. 2천 원을 마저 치렀다. 평소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제수 음식에 계산이 틀리면 안 된다는 의미가 담긴 것 같았다. 단골인 김 씨 부부에게 주인 아주머니가 큼직한 문어 한 마리를 내밀며 "별 것 아니에요. 추석 잘 쉬세요."라고 덕담을 건넸다.
의성 김씨 종가에선 추석 차례상에 메(밥)를 올리지 않기 때문에 나물은 사지 않았고, 쌀, 사과, 배, 대추, 감 등 과일은 며칠 전 도매시장에서 사놨다. 이번 차례상을 장만하는 데 든 비용은 대략 100만 원 정도. 물가가 올라 해마다 조금씩 더 든다고 했다.
▷제사의 법칙=몇 곳에서 다양한 제수를 장만했지만 물건 값을 절대 깎지 않는 것은 종가와 다르지 않았다. 또 값에 관계없이 깨끗한 것만 고른다. 이 씨는 "제수용품은 흥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주부이다 보니 가격에 관심은 가요. 그래도 깎아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고 했다.
종부 이 씨 역시 종가집 출신으로 퇴계 선생 16대손이다. 어릴 때부터 듣고 보고, 늘 하던 일이라 힘들지 않다고 했다. "스물일곱에 시집왔으니까 벌써 40년이 됐네요. 고단하지만 귀찮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라고 하자 종손 김 씨는 "두루 잘 해요. 고맙지요."라고 화답했다.
장보기는 2시간 남짓 걸려 낮 12시가 조금 넘어 끝났다. 차례상 장보기는 그래도 수월한 편이다. 기제사 때는 남자 유사 3명이 가야할 만큼 사야할 물품도 많고 종택을 찾는 사람들도 명절 때는 40, 50명 정도지만 기제사 때는 100여명 이 넘는다고 했다.
"내일 모레면 적막같은 종택에 학봉 할아버지 후손들로 붐비겠지요. 역시 집안은 사람들로 북적해야 사람사는 맛이 나죠." 안동·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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