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폐암보다 고통스러운 만성폐쇄성폐질환

담배로 인한 질병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폐암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폐질환을 다루는 호흡기 전문의들은 달리 말한다.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 폐암보다 더 고통스러우며, 이 병의 가장 큰 원인은 흡연입니다."

병 이름 자체가 생경스럽다. 하지만 이 병은 담배를 피우는 중년 남성 가운데 10명 중 1명꼴로 걸리는 흔한 병이다. 다만 자신이 이 병에 걸린 것 자체를 모를 뿐이다.

◆만성폐쇄성폐질환이란?=만성기관지염과 폐기종을 함께 이르는 병명이다. 만성기관지염은 1년에 3개월 이상 기침이나 가래가 나오고, 이런 증상이 2년 이상 지속되는 병을 말한다. 폐기종은 폐포벽이 파괴되는 바람에 허파꽈리가 커져 혈관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병이다. 쉽게 말하면 만성폐쇄성폐질환은 흡연 등으로 인해 기관지가 좁아져 호흡이 어려워지는 병이다.

나는 담배를 피우는데 아직 괜찮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이 병은 담배를 피운 지 20~30년 동안 자각 증상이 없다가 폐 기능이 50% 이상 손상된 뒤에야 정체를 드러낸다. 폐기능은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폐기능이 떨어지면 저산소증이 심해져 평소에도 호흡 곤란과 피로를 잘 느끼게 된다. 심하면 입술이나 손톱색이 푸르게 변하는 청색증이 나타난다. 혈액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져 의식까지 희미해질 수 있다. 이와 함께 2차성 폐동맥고혈압증, 급성 호흡부전, 폐렴, 기흉(흉강에 공기가 차는 병), 심장부정맥, 폐색전증(폐혈관이 막힘) 등을 초래해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병에 걸릴까? 호흡기학회 등에 따르면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30세 이상 인구 가운데 6%가 이 병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천식과는 다르다=숨소리가 쌕쌕거리며 숨이 차면 천식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겉으로 보기엔 만성폐쇄성폐질환도 천식과 비슷하다. 그러나 만성폐쇄성폐질환은 천식과 달리 중년기에 들어 서서히 시작되며, 대부분 오랫동안 흡연한 사람들에게 잘 걸린다. 천식은 주로 어린시절에 나타나며 증상이 날마다 다르다. 가족 가운데 환자가 있는 경우에 많이 발병하며, 알레르기, 비염, 습진 등의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환경오염도 원인=만성폐쇄성폐질환의 주범은 물론 흡연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실내외 환경오염도 중요한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공기오염, 간접흡연, 각종 유해가스, 작업장 분진 등도 이 병이 생기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의 국민건강영양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만성폐쇄성폐질환 발생원인 가운데 19.2%가 직업과 관련 있다고 한다. 특히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의 경우 31.2%가 직업이나 환경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됐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난방이나 취사과정에서의 공기 오염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연이 최상의 예방책=흡연자가 병을 예방하거나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담배를 끊어야 한다. 폐 기능은 25세 이후 남성은 30㎖, 여성은 23㎖씩 매년 줄어든다. 특히 흡연자는 평균 45㎖, 담배에 민감한 사람은 50~90㎖까지 감소한다.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들은 독감이나 폐렴 등의 호흡기 감염에 걸리면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증상이 갑자기 악화되고 협심증, 심근경색증 같은 관상동맥질환을 악화시켜 사망률을 50%까지 높인다. 따라서 환자들은 독감예방백신을 맞고, 폐렴구균에 대한 예방접종도 5년에 한 번씩 해야 한다.

손상된 폐 기능은 회복이 어렵지만 꾸준히 치료를 받고, 폐 기능을 강화하는 생활요법을 실천한다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주로 쓰는 치료약은 기관지확장제이다. 가능하면 먹는 약보다 부작용이 적은 흡입제가 좋다. 기관지확장제 이외에도 호흡곤란이 심하면 스테로이드를 쓰고, 염증이 있으면 항생제를 사용한다. 장기적인 산소요법과 재활요법은 만성폐쇄성폐질환에 걸린 사람들의 생존율을 높인다.

숨이 차다고 해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동을 안 하면 호흡근육의 힘이 점점 약해져 숨이 더 가빠진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적어도 1년에 두 차례 병원에 간다.

#숨쉬기 곤란할 때는 의사를 찾는다.

#실내 환경을 깨끗이 하고, 호흡을 어렵게 하는 물질을 피한다.

#청소기는 일회용 주머니가 달린 것을 쓴다.

#빗자루나 먼지떨이는 쓰지 않는다.

#다리의 혈액순환에 좋지 않는 탄력 고무줄이 든 양말은 피한다.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있는 식사를 한다.

#공기오염이 심한 날은 외부 활동을 피한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도움말·이관호 영남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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