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리가 아닌데도 국정에 간여하는 자는 단지 그 지위와 녹만을 받들어 중하게 여긴 것이다."
1873년 계유년 11월 14일. 勉唵(면암) 최익현은 조정의 실권자인 대원군의 실정을 탄핵하는 상소(계유상소)를 올린다. 최익현은 이를 통해 만동묘(명나라 신종을 위한 사당)를 헐어버리고, 서원을 없애고, 胡錢(호전·청전)을 사용하는 등 대원군의 실정을 일일이 따졌다.
5년 전의 상소와 함께 대원군을 향해 날린 이 직격탄은 결국 대원군의 실권으로 이어졌다. 당시 고종은 호전 사용, 메이지 체제의 일본과 국교수립 문제 등에 있어 아버지와 견해를 달리했다. 고종은 계유상소를 받은 뒤 아버지가 이어온 10년 세도를 끝을 내고 친정을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고종의 총애를 받아 호조참판에 오른 최익현은 이후에도 많은 상소문을 올렸다.
민 씨 일족이 일본과의 통상을 논의하자 올린 '斥邪疏(척사소)', 병자수호조약 체결 뒤에 올린 '丙子持斧疏(병자지부소)', 을사조약 체결 후 다섯 매국노를 처단하라는 '請討五賊疏(청토오적소)' 등은 유명하다.
▲1925년 쉬르레알리슴 첫 종합전, 파리에서 개최 ▲1993년 전국 6대도시 주유소 설치 거리제한 폐지.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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