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끼리 NO! 누구든지 OK! '新 마당발'

"당신의 발 크기는 얼마나 됩니까?" 신발 사이즈를 묻는 게 아니다. 인간 관계의 폭이 얼마나 넓은 지에 대한 물음이다. 이 같은 질문에 선뜻 "나는 마당발"이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학연이나 지연, 혈연으로 얽히거나 또는 직장이나 취미생활로 만난 사람들로 교유의 폭이 제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인간관계가 넓어 폭넓게 활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마당발'에 대한 시각에도 긍·부정이 교차하고 있다. 특히 폐쇄성이 강한 대구·경북에서는 지연이나 학연 등 '주어진 조건'에 의한 모임들이 주류를 이뤘고, 이를 중심으로 한 마당발들이 많았던 탓에 그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없지 않았다. '마당발=연줄이 많은 사람'이란 곱지 않은 눈길도 받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새로운 트렌드를 표방하는 '마당발'이 뜨고 있다. 앞서 얘기한 지·학연의 폐쇄적 모임을 토대로 한 마당발이 아닌 자신의 일이나 공부, 봉사 등을 목적으로 하는 개방적 만남을 바탕으로 하는 신(新) 마당발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는 것.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대구은행지부 최종하(43) 위원장. 그의 휴대전화에는 1천2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입력돼 있다. 자주 연락을 하는 사람만도 500~600명이나 된다. 관여하는 모임은 20여 개. 중, 고, 대학 동문 모임도 있지만 은행 거래 고객들과의 모임이 6개, 사회복지 모임이 3개, 노동 관련 모임이 5개로 훨씬 많다.

"인맥을 유지하는 데엔 약속을 꼭 지키는 것과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모임의 설립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하고, 회원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포인트를 두고 있어요."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모임은 한국복지재단 소속 후원자 모임. 공무원, 변호사, 약사, 교사, 사업가 등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들은 십시일반으로 회비를 모아 소년소녀가장이나 결식학생을 돕고 있다. "그냥 술이나 마시고 밥 먹는 모임이라면 오래 유지되기가 어려울텐데 봉사라는 뚜렷한 목적에다 회원들이 보람을 느끼는 덕분에 모임이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공무원인 홍석준(40) 대구시 산업지원기계금속과장.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 연구원 및 지역 기업인 등 20여 명이 참여하는 대경미래포럼을 비롯해 참여하는 모임이 20여 개나 되는 '마당발'이다. 참여하는 모임의 회원만도 500명에 달하며 기업인, 연구원, 공무원, 시민단체 관계자, 언론인 등 매우 다양하다.

"학교에 가기 위한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까 전문가들과의 접촉을 통해 지식을 쌓고, 관련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모임을 만들거나 참여하고 있습니다."

홍 과장은 시의 정책을 세우는 데 조언을 받는 등 구축해 놓은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틈틈이 전화를 해 관련 분야의 동향을 물어보는 것은 물론 시의 중요 행사에도 적극 참석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 그는 "동창회나 향우회 등 주어진 조건에 의한 만남의 경우 마음은 편한 반면 발전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공부하고, 지역 발전을 위한 고민을 서로 나눌 수 있는 모임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했다.

대구 문화계의 마당발로 통하는 손동환(52) 동원화랑 대표. 화가나 미술계 인사는 물론 음악, 문인, 정치인, 공무원, 경제인 등 그가 교유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 네자리수에 이를 정도. 학연이나 지연보단 화랑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훨씬 많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덩치가 커지는 게 아니라 발자국이 커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대화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아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아요."

명함(간판)보다는 인간적 접근이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 도움이 된다는 게 손 대표의 지론. "사람을 만날 때엔 솔직하고 당당하게 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상대방이 나에게서 난(蘭)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요."

신세대 마당발로 통하는 동아백화점 서욱진(35) 과장.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들의 수가 700여 명에 이른다. "원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을 만나면서 안목도 넓어지고 지식도 얻는 등 장점이 많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은 농구공처럼 잡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배구공처럼 쳐내는 게 원칙"이라며 "특히 회사를 떠난 분들과의 인간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데에 노력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휴대전화보단 편지로 안부를 전하는 등 아날로그적인 접근법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학연이나 지연보단 생활중심의 인간 관계가 삶에 도움을 주고, 정식적 위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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