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재왕의 인물산책] 박명재 전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

영남대 출신인 이채욱 GE코리아 사장은 사석에서 잭 웰치 전 GE회장의 경영혁신이론을 한국에 가장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사람은 박명재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이라고 했다. 朴明在(박명재·59) 전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이 2년 6개월 동안 공무원교육을 담당하면서 공무원 교육의 체계와 방법, 내용까지 완전히 바꾼 것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落馬(낙마), 6개월째 이른바 白手(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박 전 원장을 서울시청 인근 한 호텔에서 만났다. 건강해 뵈는 얼굴로 뉴스 메이커도 아닌데 찾아줘 고맙다는 인사부터 했다.

"33년 공직생활을 끝내고 평생 처음으로 놀고 있습니다. 조직의 틈바구니 속에서 산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고 앞날도 생각해보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선거 때 빚을 너무 많이 졌습니다. 경북도민 30만 명 가까운 분들이 저를 지지해줘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교회에 나가 기도로써 감사했습니다."

영일 출신인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래서 한나라당 후보로 포항시장에 출마한다는 소문도 잠시 돌았었다. 얼굴에 늘 웃음을 머금고 있어 모범적인 크리스천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내음이 물씬하다.

가끔 강의를 나간다. 변화의 시대에 공직자가 걸어야 할 길이 주제다. "3만여 개의 직업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공무원이란 직업을 선택한 사람은 특별해야 합니다. 천직이란 소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공직사회의 문제점을 세 가지 꼽았다. 경직성과 낮은 생산성과 비전문성이 그것이다. "공직 사회가 경직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공무원뿐 아니라 정부도 비판받게 됩니다. 피터 드러커가 'What they to do'라며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이냐고 물음을 던졌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모든 나라 공무원들에게 던져진 질문입니다. 경직된 문화 속에 살고 있는 공무원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는 말을 이었다. "공무원은 생산성이 낮고, 기업에 비해 전문성이 턱없이 낮습니다. 20세기는 관리자가 이끄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프로가 이끄는 시대입니다. 어설픈 관료는 나라를 망치지요. 그래서 공무원에 대한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는 그러면서 공무원 교육이 바뀌면 공무원이 바뀌고 공무원이 바뀌면 행정이 바뀌고 행정이 바뀌면 나라가 바뀐다고 결론내렸다.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출신다운 얘기다.

영일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단신 상경해 야학과 고학으로 중동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7개월 만에 행정고시에 수석합격했다. 대학 시절에 총학생회장이었던 그가 행시에 수석 합격하자 각 언론은 '총학생회장 출신이 행시 수석합격'이란 제목으로 다퉈 보도했다. "공직의 길을 걷도록 하늘이 정해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무원이 된 것을 후회한 적이 단 한번도 없고, 다시 태어나도 그 길을 걷겠습니다. 삼성 현대에서 일하는 것은 기업 이윤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서이지만 공무원은 밑줄 하나 긋는 것까지 국민과 국가 이해와 직결됩니다. 내 인생을 지배한 것은 공무원으로서 일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경북도지사로 출마한 경험에 대해 그는 "고향 분들이 무엇을 바라고 경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딘지를 깊이 연구하고 고민하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그가 얻어낸 결론은 '소통', '개방', '미래', '도약'. "경북은 한 정당이 독식해 10여년간 정부와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또 이념적·정당적·지역적·사고적으로 경북은 닫혀있습니다. 미래 지향적이지 못하고 과거 지향적이기도 하지요. 경북은 발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대형 프로젝트로 도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북 발전을 경북의 어젠다가 아니라 국가의 어젠다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는 대형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포항을 제4경제자유구역으로 만드는 것을 들었다. 포항이 환태평양 시대와 통일 시대의 중심 항구가 돼야 한다는 것. 포항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 육성하는 것이 경북을 산업수도로 만드는 첫 길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구·경북의 통합을 얘기했다. 대구와 경북이 분열돼서는 국가의 중심이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수도권에 대항하려면 영남권이 뭉쳐야 합니다. 그 전제가 대구경북 통합이지요. 대구직할시는 관료적 이익 때문에 만들어졌어요."

최근 건교부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그는 "만약 다시 한번 공직자로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가와 경북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게 지난 지방선거에서 표를 준 많은 분들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라는 얘기다.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