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김용규 지음/웅진지식하우스 펴냄
S#1
남자의 정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힘차게 헤엄치도록 꼬리가 긴 놈과 그냥 돌돌 말린 꼬리를 가진 놈. 전자는 난자에 수정하는 정자고, 후자는 자궁 안에 있는 다른 남성의 정자를 감싸 안고 함께 죽는 정자다.
S#2
의처증은 치료할 수 없는 정신질환으로 판단돼 대부분의 미국 의사가 별거나 이혼을 권유한다고 한다. 그러나 뒷조사를 해 보니 그 아내 중 상당수가 남편이 질투심을 느낀 그 상대와 실제로 성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는데... .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진화과정에서 발달한 질투라는 방어적 메커니즘을 통해 실제 부정행위의 신호를 직감적으로 탐지해낸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정자를 감싸 '자폭'하는 정자도 방어적 심리 메커니즘의 산물. 둘 다 '질투'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이다. 병적 질투인 '오셀로 증후군'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오셀로'에서 나온 말이다.
철학은 어렵다. 그리고 고전을 읽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오셀로'의 사랑과 질투의 함수관계를 이런 식으로 풀어내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철학교양서가 변하고 있다.
역사와 영화, 미술, 연극 등 다양한 분야와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 문학과 만났다. 이 책은 세기의 문학 13편 속에서 철학적 담론을 꺼내 독자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사르트르의 '구토'에서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는 신과 구원의 문제를 건져 올렸다. 만남, 사랑, 성장, 자기실현과 같은 개인의 물음에서 시작해 유토피아, 인간공학, 사회공학 등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다양한 문제까지 아우르고 있다.
'어린왕자'에서 만남은 '길들이기'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지은이는 만남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나-너 관계맺기'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카뮈의 '페스트'에서는 '이방인'과 '시지프의 신화'를 거론하며 그의 작품 속에는 부조리와 삶의 무의미성이라는 의식이 깊게 흐르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은 문학특유의 감수성을 빌려 실존 철학이나 낭만주의와 같은 철학의 흐름이나, 종교적 구원이나 가정의 의미와 같은 우리의 삶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또 현대 철학의 첨예한 논쟁도 녹아 있다. '멋진 신세계'에서 지은이는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인간사육' 논쟁을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 김용규는 독일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알도와 떠나는 사원'이라 '다니'에서는 지식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고, '영화관 옆 철학카페' '데칼로그'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영화를 철학과 신학으로 해석하는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철학에서 문학읽기'는 문학의 기초지식부터 인문학의 풍부한 교양까지 가미된 맛깔스런 철학교양서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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