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찾은 수성구 범어산 숲길(등산로)은 도심 주변 다른 산들과 확실히 달랐다. 지난 보름간 환경시민단체 '대구 생명의 숲'에서 8천만 원의 산림청 녹색자금을 들여 친환경 숲길 가꾸기 사업에 나선 때문.
도로와 맞닿은 입구에서 능선까지 200m 구간에 나무와 천연섬유로 만든 구조물엔 하나같이 깊은 뜻이 숨어 있다.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목재 계단과 울타리는 더 이상 숲길을 넓히지 말아달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밟고 또 밟은 땅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지만 주변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서 해마다 숲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 자고 나면 또 길이 넓어지고 있다. 이에 뿌리가 흉측스럽게 드러난 나무들과 깊게 패인 흙길 구간마다 50개 목재 계단을 만들고 다시 흙을 채워 넣은 뒤 울타리를 쳤다.
울타리 너머 8곳에는 천연섬유로 만든 '그물망(네트)'이 한눈에 들어왔다. '식생네트'. 식생 복원이 가능한 곳에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도록 그물망을 설치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 천연섬유가 썩으면 바로 거름이 된다. 나무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유난히 비스듬한 12개 난간들도 눈에 띄었다. 빗물에 흙이 패이거나 떠내려 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가로 배수대'다.
이처럼 우리 동네 숲길을 다시 살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아파트 숲에 갇힌 대구의 숲들이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막자는 시민 운동이 시작됐고, 자고나면 새로 생기는 숲길을 모두 조사해 폐쇄, 복원 여부 등을 결정하는 대구시 숲길 정비 사업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대구시가 파악한 8개 구·군 숲길은 모두 81구간 247.5km. 달성군(비슬산)이 11구간 56km로 가장 많고 ▷북구(함지산 등) 14구간 42km ▷달서구(앞산 등) 16구간 29.7km ▷동구(팔공산 등) 20구간 23.9km ▷남구(앞산 등) 8구간 21.4km, ▷수성구 5구간 16.6km 순이다.
하지만 주등산로를 따라 가보면 대구시가 파악 못한 수 많은 숲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환경단체들은 "공무원이 아는 숲길보다 모르는 숲길이 훨씬 많다."며 "지금까지 도시 주변 숲길에 대한 정비 및 관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생명의 숲의 '숲 가꾸기 사업'은 동네 숲들을 이대로 버려둬선 안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범시민운동으로, 지난 2003년부터 전국 53개의 숲길 가꾸기 사업을 펼쳐 왔다. 백승기 대구 생명의 숲 사무국장은 "지난해 앞산 큰골에 이어 범어공원 범어산 숲길 가꾸기를 하고 있다."며 "범어산을 시작으로 대구 동네 숲길 가꾸기 사업을 해마다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발맞춰 내년 상반기에는 대구시가 시내 숲길 전수 조사에 나선다. 2억4천만 원을 들여 '숲길 조사원'들을 채용, 조사 결과에 따라 폐쇄, 복원, 정비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것. 홍만표 대구시청 녹지과 담당자는 "주 5일제와 웰빙 시대에 맞춰 등산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제대로 정비를 하지 못했다."며 "숲길 정비사업과 함께 관련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숲길 정보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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