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령(黃海領·49) 루트로닉 사장은 의료계에서 유명하다. 중학교 중퇴학력으로 의료용 레이저 기기를 제조·판매하는 벤처회사를 설립해 크게 성공했다고 소문나 있다. 경기도 일산의 테크노빌딩에 입주해 있는 루트로닉을 찾아 확인한 결과, 소문은 사실인 것도 잘못 알려진 것도 있었다.
우선 황 사장이 중학교 중퇴 학력이라는 것은 절반만 옳았다. 대구 화원 천내리가 고향으로 대륜중 2년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갔다.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 세계적 명문인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전자공학을 부전공했다. 코네티컷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도 공부했다.
13세 소년이 이역만리로 떠날 때 할머니께 "다녀오겠습니다."고 인사한 그는 대학 기숙사에 태극기를 걸고 생활했고 기업CEO가 되는 공부를 제대로 한 뒤 정말 그 인사처럼 10년 전 귀국했다. 레이저 시스템즈사의 아시아지역 마케팅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다 의료용 레이저 기기를 수입, 판매하는 친척이 도움을 청해 귀국한 것.
하지만 의료기 수입 판매는 그의 성에 차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쟁이 기질'이 늘 꿈틀거렸다. "다섯 살 때 잠수함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시계를 분해한답시고 하도 많이 부숴 부모님께 혼도 많이 났지요. 라디오를 만들기도 했고요. 만드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잠수함 만들려다 비록 의료기기를 만들고 있지만 그는 늘 행복하다. 만드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다. 1997년 회사를 창립, 2년 뒤 첫 제품을 출시했다. 스펙트라 VRM. 이른바 '스펙트라 시리즈' 제조의 시작이었다. 대학병원과 병의원 개원 필수장비인 외과수술용 이산화탄소 레이저, 치과전용 이산화탄소 레이저, 주름과 흉터를 제거하는 미세 피부박피시술 레이저, 문신과 색소병변 치료 레이저가 스펙트라 시리즈.
이 가운데 치과전용 레이저인 DENTA는 미국과 유럽에 수출되고 있고, 문신과 색소병변 치료 레이저인 QT는 판매량 기준으로 우리나라 1위인 루트로닉의 주력 상품이자 자존심이다.
현재 루트로닉의 주력 상품은 이제 QT가 아니다. 피부를 재생하고 각종 흉터와 주름, 기미, 색소병변을 치료하는 모자이크F1이 지난 9월 출시됐기 때문. 황 사장은 "2년반의 연구 끝에 개발한 모자이크F1은 미국 제품의 단점을 보완한 매우 훌륭한 제품이라 자부한다."며 "우리나라 모든 병원과 성형외과 의원에 팔려 모든 국민이 기본적으로 시술하는 미래의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레이저로 피부를 재생하는 기법이 몇 가지 있지만 환자가 화상에서 회복하는 기간이 필요하거나 잘못 시술하면 흉터가 남는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모자이크F1으로 피부표면부터 내부까지 미세한 레이저빔을 조사해 얼굴 전체를 새로운 피부로 바꾸는 새로운 기법은 임상결과 부작용이 전혀 없다는 설명이다.
막 시작한 모자이크F1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황 사장은 "이 제품을 우리나라 1등은 물론 세계 1등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며 "최근 동남아 지역 의사 24명이 우리 회사에 와서 각종 기기에 대한 교육을 받고 갔다."고 전했다.
직원 6명으로 시작한 벤처가 올 7월 코스닥에 상장됐고, 직원도 70여 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11월 무역의 날에는 3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일반적인 첨단 의료기기를 오히려 외국에 수출한 점이 높이 평가돼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루트로닉 제품은 ▷신촌 세브란스병원 ▷국립의료원 ▷구로고대병원 ▷차병원 ▷백병원 등 국내 유명병원은 물론 ▷미국 UCLA대학병원 ▷독일 베를린대학병원 ▷영국 버밍햄시립병원 ▷일본 게이오대학병원 등 외국 유명병원에서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루트로닉의 자랑이다.
최근 치과수술용 레이저 기기를 미국 회사에 1천800만 달러어치 수출하기로 계약했다. 외국 유명회사가 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생산·판매하겠다는 제의도 들어온다. 대학졸업 뒤 레이저 의료기기 하나에만 몰입해 온 황 사장은 미국 레이저학회의 펠로우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그러나 여기에 자족 않는다. "전세계에서 1등하는 상품을 5년 이내에 3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연구 인력이 매우 우수해 루트로닉의 목표가 이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루트로닉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끊임없는 연구 개발이 우선 눈에 띈다. 더 큰 힘은 사장이 따뜻한 눈을 갖고 있고 직원을 신뢰하고, 직원은 사장을 믿고 따르는 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황 사장은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우리 직원들은 훌륭하다.'고 말했다. 사장과 직원이라는 것은 직책과 직급으로 열할이 다를 뿐 인격체는 동일하다고 봤다. 자기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이 영웅으로 새벽에 청소하는 환경 미화원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했다.
어린 시절 유도와 태권도를 배운 6척 거구인 황 사장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으나 자만하지 않는다. '경영자든 노동자든 자만하면 망한다.'는 제목의 신문 칼럼을 오려 책상 옆에 붙여 놓고 늘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황 사장과 루트로닉의 도전을 지켜보면 즐거울 듯하다.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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