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너지지 않은 역사…충주에 가면 고구려가 보인다

이번 주 방송된 TV드라마 '주몽'에서 주몽은 '고구려'를 개국한다.

역사 속에서 잠들어있던 고구려가 드디어 안방에서 21세기 살아있는 역사로 부활한 것이다. '주몽'을 비롯, '대조영'과 '연개소문'에 이르기까지 고구려를 소재로 한 TV드라마가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방송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촉발된 역사왜곡 논란이 고구려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더불어 고구려 역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고구려는 엄연한 우리땅, 우리민족, 우리의 역사다. 중국과 북한 전역에 걸쳐 고구려유적이 산재해있지만 정작 남한 땅에서 고구려유적을 찾기란 쉽지않다.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아차산성을 제외하고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 등 삼국이 격돌했던 옛 중원(中原)땅 충주에 그나마 '고구려비'와 '장미산성' 등 고구려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다행이다.

충주땅은 백제가 지배했다. 이후 고구려 장수왕이 남하정책을 펴면서 백제를 옹진지역으로 밀어내고 중원지역을 석권했다. 철기문화가 발달하면서 철의 산지이자 교통의 요충지인 충주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 모두에게 전략적 가치가 있었다. 게다가 남한강을 중심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있어 정주하기에도 좋은 지역이었다.

'중원고구려비'는 5세기 후반 이 지역을 국원(國原)이라고 칭한 뒤 남방진출의 거점이 될 이 곳에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신라진흥왕순수비도 이처럼 고구려비를 본받은 것이이라.

신라는 6세기 고구려로부터 한강하류 지역을 빼앗은 뒤 이곳에 '중원소경'을 세우고 대가야유민들을 이주시켰다. 이곳에서 삼국은 물론 가야문화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신라는 삼국통일뒤 이 지역에 서린 왕기(왕기)를 제어하고 지역토착세력을 동화시키기위해 중앙탑을 세웠다. 중앙탑과 중원고구려비, 장미산성, 그리고 신라귀족들의 무덤인 '누암리 고분군'이 함께 자리한 이유다.

새해에는 옛 중원땅을 찾아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의 역사 속으로 떠나보자.

▶장미산성(薔薇山城)

고구려는 성(城)의 나라다. 그런데 고구려 성은 특별하다. 중국에 있든, 우리 땅에 있든간에 고구려성은 절벽이나 험준한 산허리에 축조됐다. 그래서 철옹성이라고도 불렸다. 당나라 50만 대군의 공격을 막아낸 양만춘도 견고한 '안시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구려 성은 깎아지른 절벽을 이용하거나 강변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이용, 성벽을 쌓아 아찔하면서도 견고한 느낌을 주면서 자연과도 잘 어울린다. 산허리를 둘러싸면서 쌓아 구불구불하다. 아차산성, 온달산성, 혹은 장미산성 등 남한 땅에서 찾아낸 고구려 성은 모두 이같은 특징을 갖고있다.

충주시 가금면 장천리 장미산자락. 중원고구려비에서 조정지댐(탄금호) 옆으로 난 지방도를 따라 감곡방향으로 2km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장미산성' 팻말이 보인다. 해발 300m가 조금 넘는(337m) 나직한 산이지만 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비교적 가파르다. 봉학사 뒤쪽으로 돌아내려가자 반쯤 복원시킨 성벽과 옛모습 그대로인 성곾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곾 아래쪽으로는 길고 좁게 판 참호의 흔적까지 그대로다. 예비군훈련장에 새롭게 파놓은 참호처럼 생각됐다가 바닥에 촘촘이 박혀있는 돌조각들이 예사롭지않아 다시 낙엽속을 헤쳐봤다. 옛고구려 성곽의 바깥해자(垓字)인 모양이다.

겉벽이 무너져 속살이 다 드러났지만, 촘촘히 쌓아올린 속벽은 옹골차고 날카로웠다. 강건하게 쌓아올린 고구려인의 기상을 보는 듯했다.

하긴 이 성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군사들이 피를 흘렸을까. 발아래 굽이치는 남한강을 바라보다가 1천600여년 전의 함성들이 들려오는 듯한 환청을 느낀다. 고구려가 바로 거기 있었다.

장미산성의 길이는 2천590m. 봉학사쪽 외에는 비교적 온전한 석성(石城)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지난 92년 지표조사결과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토기와 기와조각들이 함께 출토돼 삼국이 차례로 이 성을 둘러싸고 쟁탈전을 벌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장미산성의 전설

충주시의 문화유산해설사 홍문희(58) 씨는 장미산성의 역사에 재미있는 민간전설을 보탰다. 삼국시대때 이곳 보련산 서쪽 가마골에는 '보련'과 '장미'라는 오누이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타고난 장수였던 오누이는 목숨을 걸고 성쌓기 시합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누이보다 성쌓는 실력이 떨어지는 아들이 시합에 져서 목숨을 잃을 것을 걱정, 한가지 꾀를 냈다. 손수 떡을 해서 누이를 찾아갔다. 보련이 떡을 먹는 동안 장미가 성을 쌓을 수 있도록 시간을 벌었다. 결국 보련이 떡을 먹고 다시 성을 쌓으려는 순간, 장미가 성을 다 쌓았다는 신호를 울린다. 보련은 어머니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 길로 집을 떠났고 다음 날 보련의 집에 큰 별이 떨어졌다. 장미산 맞은 편에 있는 아담한 산이 보련산이다.

글·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