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 참 거창의 이름의 드라마다. 드라마의 느낌과 딱 맞아 떨어지는 제목이기도 하다.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직업, 그리고 그 속에 우뚝 솟은 권력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 좀 거창하지만 수긍할 수 밖에 없는 힘이 있는 제목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것은 제목 때문은 물론 아니요, 의학드라마이기 때문도 아니다. 작품의 힘은 원작에 있다. 원작자인 '아먀자키 도요코'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작품을 쓰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하얀거탑 역시 마찬가지. 40년 전의 작품이지만 이 소설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권위적인 위계의식의 사회, 서열과 학벌을 따지고, 권력을 쫓으려는 자들이 벌이는 서로 꼬리를 물고 물리는 인간관계를 심도있게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리라.
#장준혁
참 잘났다. 생긴 것 멀쩡하고, 수술솜씨는 서부극의 총잡이처럼 화려하면서도 깔끔하다. 좀 흠이라면 잘난 척 하는 것이랄까. 하지만 워낙에 잘난 인물이니 잘난 척마저도 인정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게다가 권력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아첨하는 명민함까지 갖췄으니 잘나갈 수 밖에 없는 것도 당연지사다.
살다보면 주위에서 이런 인물들을 간혹 만난다. 괜한 시기심과 질투가 느껴지는 인물, 하지만 한치의 빈틈도 없어 실력으로 승부하자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내심 '밥맛'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기회만 있다면 어떻게든 끌어내리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심리다.
중소기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김진용(가명·31)씨는 "우리 회사에서 드라마 속 장준혁과 맞먹는 인물을 찾는다면 부서 차장쯤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리와 과장을 뛰어넘어 곧바로 차장으로 승진한 케이스. 워낙 일 잘하기로 정평이 나 내년쯤이면 부장을 뛰어넘어 이사급으로 승진할 것이라고 모두들 내심 인정하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그리 매끄럽지 못하단다. 왜일까?
"모든 면에 뛰어난 사람 없잖아요. 워낙에 워커홀릭이다보니 일 외에 부서원 처우 등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써주지 않아 늘 욕을 먹죠. 부하직원들이 딱 싫어할 사람입니다. 게다가 너무 큰 나무가 있으면 그 아래 작은 나무들이 자랄 수 없게 만들잖아요. 늘 비교만 당하니까 부하직원들 입장에서는 왕따 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지요."
#이주완
솔직히 측은지심이 드는 캐릭터다. 한때 최고조에 달했던 능력마저 이젠 소진해버리고, 나이까지 많다. 그렇다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넓은 아량이라도 지녔으면 좋으련만 이미 권력의 맛을 너무 봐버려 쉽사리 놓지를 못한다. 그러니 불쌍할 수 밖에. '노욕'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릇된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젊은 부하직원들의 기세에 기가 죽지만 '내가 누군데!'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한 공기업에 근무하는 장현정(가명·35·여)씨는 "일을 하는데는 연륜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젊은 감각이 필요할 때도 있다. 상사 중 한 분은 도무지 자기 고집만 내세우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일을 하기 힘들 때가 많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들의 특징은 '잘되면 내탓, 못되면 남탓'.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다.
"지난 번에 젊은 팀원들이 주축이 돼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끝나고 보니 공은 전부 자기 것으로 만들었더군요. 그냥 그 뿐이면 참겠는데 대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발뺌을 하고 그 책임을 부하직원들에게 밀어버리죠. 경쟁 속에서 자신의 출세를 보장받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나이들어서 저러고 싶을까'라는 생각듭니다."
#최도영
그는 '너무나도' 올곧다. 원리원칙에 충실하고, 불의에도 굴하지 않는 소신있는 사람. 바람직한 인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사람이 많아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
하지만 갑갑한 인물이다. 너무 곧은 나무는 쉬이 부러지게 마련이다. 바람을 타는 대나무처럼 때로는 유연하게 자신을 구부릴줄도 알아야하지만 '구부릴바에는 부러지겠다'는 스타일의 전형을 보인다. 가끔 이런 융통성 없는 사람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불똥이 튀기도 한다. 드라마속에서 최도영 밑에서 전임의를 맡고 있는 하은혜 역시 동분서주하며 꽉막힌 상사를 덮어주려 애를 쓴다. 좀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최도영과 같은 캐릭터는 군대에서 소위 이야기하는 '고문관'에 가까울 듯하다.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박세훈(가명·32)씨 역시 이런 융통성 없는 동기 때문에 늘 피해를 본단다. "바른 말은 못참는 성격이라 늘 피해를 입는 친구죠. 그 용기에 찬사를 보낼때도 있지만 같이 근무하는 동기 입장에서는 아주 미치겠습니다. 부장님 뒤꽁무니 따라다니며 아부하고 기분을 풀어드리는 것은 늘 제 몫이기 때문이죠. 가끔은 모른척 져주기도 했으면 좋으련만."
#우용길
노련한 권력가. 치밀하게 계산하고 드러나지 않게 행동한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으면서 자신의 밑으로 모든 세력을 결집시키는데 그 권력을 십분 활용하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어떤 세력의 집단에 발을 담그지도 않는다. 그렇게 했다간 자칫 잘못하면 꼬리를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술수가 필요할 때는 신속하고 소리없이! 보고 있노라면 무서운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정치력으로 따지자면 최고수의 인물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주도면밀한 인물은 잘 없다. 보통은 눈에 빤히 보이는 저급한 수를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성용(가명'41)씨는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권력관계는 존재하게 마련"이라며 "
차라리 부원장처럼 '소리 소문없이' 뒤통수를 친다면 오히려 고마울 일이지만, 보통은 눈에 빤히 보이는 꼼수를 쓸 뿐이어서 주위 사람의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고 혀를 찼다.
◆정신과 의사가 본 장준혁과 이주완
장준혁 : 그는 자기애적 성격의 소유자다.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 언제나 자기자신에게 몰두하고, 거절이나 모욕 당하는 것이 두려워 내면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장준혁은 자기 콤플렉스를 넘어서기 위해 과대적인 자기(self)를 발달시킨다. 과대자기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다른 사람의 갈채가 필요하고, 감정에 이끌리기보다는 언제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상대를 방어하기 위해 무장하고 기술을 연마하는 냉혈인간이 되어간다. 아들에 대한 염려로 노심초사하는 그의 어머니의 등장은 그가 드러내기 싫어하는 내면과 같은 존재다.
아버지상과 같은 인물이었던 이 교수가 자기를 쫓아내려는 의도를 알게되자 장준혁은 버림받은 상처와 적개심에 시달리며 냉정심을 위협하는 '거세불안'에 빠져든다. 권위에 대한 반항과 동시에 무의식적 죄책감을 보이는 장준혁은 자기를 지켜나가기 위한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특히 노민국 교수와 공동 집도하게 된 수술 장면에서 검열없이 표현되는 적나라한 경쟁심과 질투심은 냉철한 판단을 잃어버리고 강한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취약한 그의 자기애적 성격의 구조를 잘 드러낸다.
이주완 : 이교수는 마치 외과의국과 자기 자신이 융합된 것처럼, 자신과 의국을 동일시하는 자기 도그마에 빠져있는 인물이다. 뒷거래로 제 3의 인물을 물색하는 비열한 면을 보일 정도로 이 도그마는 강하게 작용한다. 플라톤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선한 독재자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조직은 나와 남의 경계가 분명해야 하며, 다른 견해를 가진 인물의 견해를 들을 줄 알고 양도할 수 있으며, 더 이상 간섭하지 않는 성숙된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대인관계적 지지구조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대학병원같은 거대한 조직안에서 이교수는 주도권을 상실하고 결국 의존적이고 소외된 존재로 추락할 것에 대한 소멸불안으로 발악하고 있다.
김성미(마음과 마음 정신과 원장)
한윤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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