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타임 캡슐(time capsule)

1997년 4월, '미래의 꿈'이란 주제로 학급회의를 하다가 어느 학생이 20년 뒤인 2017년에 다시 한번 만나보기 위해서 꿈을 담은 '타임 캡슐'을 묻자고 했다. 모두들 말로만 듣던 '타임 캡슐'을 직접 묻는다고 좋아라 하며 찬성했다. 5월 1일부터 매일 1명씩 쓴 학급일기와 각자 꿈을 담은 봉투, 1년 동안 교실과 학교 이곳저곳을 찍은 사진과 학급을 운영하던 모든 자료들을 함께 묻기로 했다. 몇 번의 회의를 거쳐서 20년 뒤에 펼쳐볼 작은 책을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후 2017년!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나의 친구들은 20년이란 세월을 어떻게 보내었으며, 그날의 만남을 위해서 나는 오늘 어떤 자세로 하루를 보내야 할까? 반성해 보고 최선을 다하는 계기로 삼아 보자.' 20년 뒤에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결혼을 했을까? 결혼을 했다면 ( )살에 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가정을 꾸미며 살고 있을 것이다, 나의 남편은 이런 사람일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연예인은, 미래에 나의 2세의 이름과 생김새는, 우리 학교와 우리 나라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20년 후에 털어놓고 싶은 나의 비밀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 여러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담임선생님은 그때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실까, 내 짝은 지금 ( )인데 이렇게 변해 있을 것이다… 등.

여름에 많은 학생이 우리 집에 왔다. 20년 뒤에 내가 무슨 일로 약속장소에 가지 못하면 내 딸(당시 3세)을 보내기로 내 아내와 약속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1998년 2월 19일 교실에서 다과를 준비하여 '미래의 20년 2017년! 그때 나이 34세 어디서 사회에 공헌하며 있을까?'란 제목으로 마지막 시간 행사를 가졌다. 고미주(1번)부터 자기의 꿈을 담은 책을 봉한 봉투를 20년 보관할 '타임 캡슐'에 넣으며, 이별의 심정을 친구들에게 발표했다. 나는 목이 잠긴 채 "2학년 4반 여러분! 앞으로 20년 후 만날 때까지 위로는 하늘을 보고, 아래는 땅을 보아, 한점 부끄럼 없는 행동을 합시다!"라며 끝을 맺었다. 교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돌아섰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모두 손을 흔들며 "여러분!" "선생님!" "미래의 20년 2017년! 우리 다시 만나요!" 교실 곳곳에서 학생들이 흐느끼고 있었다. 나도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학생들의 꿈이 담긴 이 '타임 캡슐'은 나에게 '스승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한 명의 '스승'은 '감옥' 하나를 줄이는 역할을 하고, 하루에 1명의 학생을 칭찬할 수 있다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간절히 보고 싶다. 내가 사랑한 나의 제자들을!

이원수(대구 경운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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