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한 해를 기다려 만날 수 있는 귀한 손님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봄비는 조용히 찾아와 밤새 세상을 적셔놓았다. 젖은 도로를 달리는 차바퀴의 마찰음은 바위 기슭으로 밀려오는 파도소리 같다. 창문을 여니 아직 조금 춥지만 온몸에 쏴하게 스미는 공기는 봄비의 살결이다. 이 손님을 어찌 집 안에서만 맞으리.

나는 살금살금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비릿한 비 냄새가 가슴에 스민다. 원래는 비에 젖은 흙 냄새라고 하는데 비 냄새라는 어휘가 더 좋다. 천천히 걸어본다. 떠도는 물기가 깃털처럼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화단 곳곳에 감로수를 마신 냉이꽃, 제비꽃, 광대나물이 벌써 꼼지락꼼지락 피었다. 고개들어 보니 목련도 가지마다 소복소복하다.

봄비는 한 해를 기다려 만날 수 있는 손님이며 반가운 선물이다. 이 신선한 선물은 또 한 해를 무사히 보내야 받을 수 있다. 시간은 좌충우돌 흘러갈 뿐 '무사함'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내년에 봄이 다시 오고, 내가 또 봄비를 만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우리는 늘 가능성에 기대어 살지 않는가.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알뜰살뜰히 즐겨야 할 따름이니 어디론가 봄비 내린 아침 풍경을 적어 보내고 싶다.

나는 들고 나온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옛 애인을 떠올려본다. 안 보내느니 못하다. 늦잠 자고 있는 서방님께 보낼까? 싱겁기 짝이 없다. 해묵은 친구는? "늙어가면서 뭔 호들갑이여."할 게 뻔하다. 마땅한 주소가 없구나. 이맘때 잘 어울리는 김남조 님의 시 제목이 떠오른다.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

아무래도 오늘 종일 나는 봄비의 식민지가 될 것 같다.

사윤수(대구시 북구 대현2동)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육군사관학교에 대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이에 대한 육사총동창회의 반발이 이어졌다. 총동창회는 대통령의 발언이 사...
삼성전자 '갤럭시Z 폴드8'의 역대급 사전예약에 힘입어 구미에서 열린 '2026 갤럭시 런칭 페스타 with 구미' 행사에는 200여 명이 ...
경북 지역 지자체들이 인구 방어선 유지를 위해 애쓰고 있으며, 구미시는 40만명 방어선 붕괴 위기를 겪고 있고, 고령군은 인구 3만명 회복을...
필리핀에서 중국인이 필리핀인으로 신분을 위조하여 전력망 사업에 개입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가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필리핀 이민국은 로런..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