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기원전 2000년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상형문자로 새겨진 글귀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그때의 청소년들을 보고 탄식했던 말이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부조화, 갈등은 인류의 오랜 숙제 중 하나다. 요즘의 대학생들을 보는 기성세대의 시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도외시한 채 취업에만 매몰되거나, 갈수록 개인주의로 치닫는다며 비판하는 기성세대들이 적지 않다. 실상은 어떨까?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2007년 대학문화를 해부해 본다.
"컴퓨터 자격증 취득, 영어회화, 한자특강에다 학점 관리, 복수전공, 해외 어학연수까지 요즘 대학생들은 말 그대로 눈코 뜰 사이조차 없어요."
낭만과 자유로움으로 상징되던 대학. 그러나 2007년 대학생들은 취업난 탓에 고등학교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은 '빡빡한' 대학시절을 보내고 있다. '취업' '개인주의' '열정'이란 3가지 키워드를 통해 요즘 대학생들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취업='가문의 영광'.
지난 3월 초 지역 한 대학의 '인권과 법' 과목 첫 수업시간. 교수가 칠판에 "인간은 무엇인가?"란 문구를 쓰고, 학생들에게 차례차례 질문을 했다. 한 학생이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답하자, 그 교수는 "그렇다면 학생들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학생들의 대답은 99%가 '취업'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여학생은 '취업'과 함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혀 궁금증을 자아냈다. '남자친구'란 그 여학생의 말에 일순 강의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가문의 영광'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취업은 요즘 대학생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 대학에서는 취업과 관련된 전에 볼 수 없던 풍경이 빚어지고 있다.
얼마 전 국외봉사활동 지원자 90명을 모집한 계명대. 중국, 몽골에서 2주간 봉사활동을 하는 이 프로그램에 지원한 대학생 수가 500명에 달해 경쟁률이 5대 1을 훌쩍 넘었다. 계명대 학생지원팀 김주욱(33) 씨는 "기업체마다 채용 때 봉사활동에 가산점을 줌에 따라 학생들이 대거 몰린 것 같다."고 귀띔했다.
'복수전공' '부전공'이 필수가 된 것도 취업난 때문에 나타난 현상. 영남대 영어영문학과 4년 송남희(21·여) 씨는 "2학년 때부터 경영학을 복수 전공, 졸업할 때엔 학사 학위 2개를 받게 됐다."며 "친구들 대부분이 언론정보, 국제통상, 경영 등에 복수전공을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1학년을 마치고 군에 가는 남학생 비율이 80%를 넘는 것도 취업을 위해 2학년부터 졸업까지 조금이라도 시간을 길게 갖기 위해서다. 영남대 전자공학과 3년 유용연(23) 씨는 "2학년을 마치고 군에 가는 남학생은 요즘엔 찾아보기 힘들다."며 "ROTC가 남학생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도 취업난 때문"이라고 했다.
취업에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동아리 활동에도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영어와 같은 어학이나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공모전 관련 동아리들은 인기를 끄는 반면 탐구, 학술, 종교, 취미와 연관된 동아리들은 신입생을 구하지 못해 찬바람이 도는 형편. 또 취업이나 재테크와 관련해 학생들끼리 자체 결성한 동아리들이 각 학과마다 4, 5개에 이르는 것도 최근에 나타난 새 흐름이다.
#"사은회가 뭐예요?"
대학생들의 개인주의 성향에, 같은 대학생들도 '우려' 담긴 시각을 갖고 있다. 학생 수가 300명에 이르는 지역 대학 한 학과의 경우 올봄 MT를 가려했으나 참여하려는 학생들의 수가 워낙 적어 아예 무산되고 말았다. 영남대 기계공학부 4년 송현철(25)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학과 행사에는 참여했다."며 "요즘엔 리포트 제출, 약속 또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단체 행사에 빠지는 후배들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놀이문화나 주거형태에도 개인주의가 스며들고 있다. 76학번인 계명대 신문사·교육방송국 조재홍(52) 행정팀장은 "학생들과 함께 회식을 할 경우 저녁만 간단히 먹고 노래방보다는 PC방, 보드방으로 가는 것을 더 좋아해 적잖게 놀랐다."고 털어놨다.
MT 등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싫어하는 대신 인터넷 채팅 등 온라인에서의 만남을 선호하는 추세다. 또 고등학교 동문회 모임 보단 같은 반 친구끼리 모이는 반창회와 같은 소규모 모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혼자 방을 쓰는데 익숙해 대학가에서도 원룸에서 혼자 사는 경우가 절반을 훌쩍 넘고 있다. 졸업생들이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은회를 혹시 아느냐는 물음에 '모든' 대학생들이 "사은회가 뭐예요?"라고 되물어 기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영남대 유용연 씨는 "동아리방 청소를 같이 하자고 할 때엔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시험 족보나 정리노트를 나눠준다고 할 때엔 부리나케 달려오는 게 요즘 대학생의 모습"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열정, 개성, 주관.
계명대 신문사 편집국장을 맡고 있는 백지원(22·여·신문방송학과 3년) 씨는 "조금만 힘들면 포기해버리거나 '개념' 없어보이는 대학생들도 없지 않다."며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솔직함과 열정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또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고, 도전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의 굳어진 틀을 깨보려는 패기도 갖추고 있다는 게 대학생들의 이구동성.
영남대 송남희 씨는 "요즘 대학생들은 다양한 해외경험으로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고 있다."며 "자기계발에 적극적인 것이 우리들의 강점"이라고 했다. 또 계명대 신문방송학과 2년 이유진(23·여) 씨는 "노는 듯해도 이른 나이에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자신의 장점을 찾아 다른 이들과 차별화를 둘 줄 아는 것이 2007년 대학생들의 트렌드"라고 덧붙였다.
글·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대학생 '올해 소원' 설문조사…뭐니뭐니해도 "직장"
"가장 이루고 싶은 소망은 뭐니뭐니해도 취업!"
대학생 공모전 미디어 '씽굿'과 취업사이트 '파워잡'이 최근 대학생 356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2007 희망뉴스'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가장 많은 28.9%가 취업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취업과 연관이 깊은 '영어의 좋은 성과'(14.3%) '자격증 따기'(12.6%) '어학 연수'(8.4%) '학점높이기'(7.6%) '인턴·공모전 등 기업체험'(2.5%) 등을 합칠 경우 10명 중 7명 이상이 '취업'을 지상과제로 삼은 셈. 그 외 대학생과 관련된 설문조사 결과들을 모아봤다.
▶55.8%="취업을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있다" (잡코리아)
▶10.7개월=4년제 대졸 취업자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갖기까지 구직활동을 한 평균기간. (잡코리아)
▶"취업 축하해!"=졸업반 학생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 1위(51.3%). (알바몬)
▶취업준비(21.3%)와 학과공부(19.6%)=대학생활 4년 동안 가장 열심히 하고 싶은 것 1, 2위. (커리어)
▶'넘쳐나는 살'=대학생들이 가장 버리고 싶은 것 1위(35%). (알바몬)
▶12%=한국 대학생 우울증세 비율. (분당서울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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