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 시조산책-이달균 作 '근조화'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근조화

이달균

꽃들이 영안실에 부동자세로 서 있다

목발에 의지한 덧없고 창백한 도열

언제나 벽을 등진 채 배경이 되고 만다

관계를 맺지 못한 死者와의 시든 동행

한번도 저를 위해 피고 지지 못했던

목 잘린 꽃들의 장례, 殉葬은 진행형이다

대궁이가 잘린 흰 꽃들이 주로 근조화로 쓰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창백한 도열이 될 수밖에 없지요. 행간이 자못 암울해 보이지만, 워낙 치밀한 구도가 시선을 놓지 않는군요.

삶과 죽음의 어름에서 풀어낸 생명 이미지의 밀도. 영안실에 부동자세로 선 꽃들은 생명의 핏기가 가신, 벽을 등진 죽음의 배경으로 존재합니다. 부음이 전해지기도 전에 이미 '목 잘린 꽃들의 장례'. 이제 그들을 기다리는 건 '사자와의 시든 동행'뿐입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다 꽃입니다. 애시당초 꽃으로 세상에 옵니다. 그러나 덧없는 떠돎 끝에 언젠가는 목이 꺾인 채 버려지는 존재, 존재의 꽃. 화려한 문명의 뒤란에서 순장은 늘 이렇게 '진행형'입니다.

오늘의 조문객이 내일은 또 조문객을 맞기도 할 테지요.

박기섭(시조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정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22일 현직의 자동 공천을 부정하며, 공정한 경쟁을 위한 공천 기준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를 당을 ...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변화로 인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판결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적으로 글로벌 관세...
정치 유튜버 전한길이 그룹 슈퍼주니어 최시원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3·1절 기념 자유음악회'에 초청했으나, 가수 태진아 측은 출연 사실을 ...
태국의 유명 사찰 주지 스님 A씨가 여러 여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논란에 휘말렸다. 최근 소셜 미디어에 유포된 영상에는 A씨의 아내가 다른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