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처진 어깨의 아버지, 자식들에게 외면당하는 어머니, 마음붙일 곳 없는 가장.
중년의 풍경은 다양하지만 그동안 영화에서 그려진 것은 청춘남녀의 아버지, 어머니로 그려진 게 전부였다.
이번 가을은 중년배우들이 주인공으로 중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한다.
이 영화들은 이미 중년을 맞이한 중년관객에게도, 중년의 어머니 아버지를 둔 젊은 관객에게도 즐거운 가족영화가 될 것 같다.
그 첫 번째 테이프를 끊는 것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이다. 6일 개봉하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평생 회사에 충성하고 가정에 희생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실을 다루고 있다.
주변머리가 없어 윗사람에게 아부할 줄 모르는 조민혁(백윤식) 부장은 성실함으로 한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승진도 못하고 만년부장으로 지내다 퇴직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있다. 그에게는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접은 꿈이 있으니 바로 드럼을 치는 것이다. 친동생처럼 조 부장을 따르는 후배 박승재(박준규) 과장은 기러기 아빠 신세라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의 유일한 낙은 퇴근 뒤 클럽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기타를 치는 일.
최석원(임하룡)은 한때 무대에서 베이스 실력을 자랑하던 뮤지션이었지만 이제는 회사의 경비로 한참 나이 어린 상사에게 굽실대는 처지다. 역시 퇴임을 기다리는 김종수(임병기) 부장도 색소폰 실력을 숨겨두고 있다. 우연히 서로의 꿈을 알게 된 이 4명은 함께 연주회를 열기로 한다. 이렇게 '갑근세 밴드'가 결성된다.
영화는 평생 한 직장에 몸 바쳐 살다 퇴직을 앞둔 가장의 이야기다. 특히 직장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세심하게 살펴본다는 점과 아버지들의 획기적인 인생역전이 아니라 작은 연주회라는 소박한 꿈에서 활력을 얻는다는 점을 강조해 현실성을 부여했다.
이와 유사한 소재의 '즐거운 인생'도 13일 개봉한다. 이 영화는 20년 전 해체된 록밴드 '활화산 멤버'들의 중년을 비춘다. 교사인 아내와 여중생 딸이 바쁜 아침, 침대에서 돌아누운 아빠 기영(정진영)은 할 일이 없다. 다니던 은행에서 잘린 뒤 하루하루 보내기가 힘겹다. 자식 때문에 학원비를 충당해야 하는 가장 성욱(김윤석)은 낮에는 택배회사 직원,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유학 때문에 자식과 아내를 캐나다로 떠나보낸 '기러기 아빠' 혁수(김상호)의 유일한 낙은 몇 초에 목매는 국제전화뿐이다. 이들이 '활화산'이라는 대학 시절 록밴드의 이름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는 이야기가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이다.
이처럼 가족과 사회를 위해 평생을 바쳐 이제 남은 것이 별로 없는 중년 남성들이 '음악'을 계기로 다시 힘을 얻는다는 것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즐거운 인생'의 공통된 점이다.
그런가 하면 13일 개봉하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은 자식들에게 외면당한 중년 여성을 내세웠다. 도범(강성진)은 아이를 교도소에서 낳게 된 아내의 보석금을 마련하기 위해 2천만 원이 필요하다. 평생 농사밖에 모르던 노총각 근영(유해진)은 결혼 사기를 당한 후 틀니를 해넣을 돈에 쌈짓돈을 얹어주신 어머니 뵐 면목이 없어 자살하려고 한다. 도범의 처남 종만(유건)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백수. 이들은 국밥집으로 큰 돈을 번 권순분(나문희) 여사를 납치한다.
권 여사는 납치범들이 자식에게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하자 평소 연락도 잘 안하는 자식들에게 은근한 기대감을 품는다. 그러나 기대는 무너져내린다.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선거운동에 바쁜 큰아들은 장난전화로 치부하고, 골프장 사업에 진출하려는 큰딸도 시간 없다며 전화를 곧장 끊는다. 둘째딸은 왜 언니, 오빠 놔두고 나한테 전화하느냐고 화를 내고, 노름 하느라 바쁜 백수 막내아들은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미 자식들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준 상태인 권 여사는 자식들에게 돈을 다시 받아내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순진하게도 5천만 원이 목적이었던 납치범들에게 500억 원은 받아야 한다며 몸값 500억 원을 경찰과 자식들에게 요구한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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