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서윤영 지음/역사비평사 펴냄
유명 종가나 고택의 기둥과 대들보에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사용된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아름다움,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조상의 지혜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조선 후기 목재 수급이 원활하지 못해 생긴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조선 후기는 농업생산량의 증가와 함께 민(民)의 성장이 두드러져 주택을 신축하거나 증개축하는 일이 많았고 증가하는 수요에 공급이 따라오지 못해 전국적으로 목재 품귀 현상이 발생,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은 굽은 나무라도 베어 집을 지어야 했다. 건축 관련 서적에 '집을 짓는데 굽은 나무를 사용하지 마라'는 항목이 빈번히 등장하는 이유도 구조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굽은 나무 사용이 많았음을 증명하는 얘기라는 것.
이 책은 신석기시대에 처음 생겨난 우리나라 주거 건축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해주는 건축 교양서다. 총 7개 장에 걸쳐 건축 세부 양식의 변화를 분석하고 사용 용도에 따른 건축물 자체의 분화 과정, 도시나 마을과 같은 주거 집단의 생성 원인, 한 시대 사회제도가 그 시대 건축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을 고찰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형성된 여러가지 독특한 건축 양식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건축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피고 있다.
책에 따르면 현재와 같이 주택이 사적 공간으로 개인화가 된 것은 불과 200~300년밖에 되지 않았다. 오랜 기간 주택은 주거 공간과 생산 공간이 합쳐진 직주일치(職住一致)의 공간으로 존재해 왔다. 조선시대 건축의 큰 특징을 이루는 사랑채와 안채의 구분은 남녀차별을 나타내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나의 주택안에 공존했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담당하는 사람이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외부 손님을 접대하고 공적 업무를 보는 공간인 사랑채는 조선 후기 솔거노비보다 외거노비가 많아지고 임금노동과 같은 사회 서비스가 분화되면서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구한말 본격적으로 기방과 요릿집 등의 상업 건물이 생겨나면서 사실상 독립된 건물의 사랑채는 사라지게 되었다.
일제시대 생겨난 최초의 상품주택인 개량 한옥에 사랑채 대신 가족간의 단란행위를 위한 응접실이 등장했으며 고도 성장기를 맞이한 1970년대에 아파트가 대중화되면서 응접실은 거실로 대체되었다. 오늘날의 주택은 아파트와 2층 양옥, 개량 한옥 등을 불문하고 모든 공적 공간이 축출된 채 완전한 사적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저자는 주거 형태가 한옥에서 아파트로 바뀌었지만 전통 주거 형태가 단절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조선 후기부터 시작된 한옥의 겹집화, 내향화가 낳은 현대적인 해석이 아파트라고 지적한다. ㅡ자형 초가삼간이 겹집으로 바뀐 뒤 ㄱ자 집이나 ㄷ자 집으로 변형되었다가 1930년대 가회동 개량 한옥으로 대표되는 ㅁ자 집으로 변한 것이 아파트 유형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품 주택이었던 가회동 개량 한옥은 조선시대 한옥과 현대의 콘크리트 건축물의 주거 형식 맥을 잇는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 1950~1960년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된 아파트는 서구에서 직수입된 설계 방식에 따라 지어져 내부 구조가 지금과 달랐다. 실내를 공동/개인 혹은 주간/야간으로 엄격히 구분하는 서구 아파트 구조 때문에 현관문을 중심으로 좌우의 공간이 양분되는 특징을 가졌다.
그러나 1970년대 이르러 아파트가 일반화되면서 현관문을 열면 바로 거실로 연결되고 침실, 주방, 화장실로 이어지는 한국식 아파트가 나타났다. 이는 대문을 열면 문간을 거쳐 안마당으로 연결되고 마당에서 부엌과 대청, 건넌방 등으로 갈 수 있는 개량 한옥의 동선이 아파트에 재현되었다는 증거다.
저자는 아파트 평면도에 나오는 2bay, 3bay 등은 한옥의 두 칸 겹집이나 세 칸 겹집의 공간 구조와 흡사하고 330㎡(100평) 이상의 대형 아파트라 할지라도 네 칸 겹집, 다섯 칸 겹집의 현대적 해석일 뿐이며 전통 주거는 박제가 되어 민속촌과 한옥 마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개량된 모습으로 우리 삶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고 강조한다. 276쪽, 1만 2천 원.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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