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4년째 종갓집 맏며느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장을 보고 시댁이 있는 울진에서 본격적으로 차례상 준비를 했습니다. 친정아버지께서 막내라 이런 일을 큰집에서 어깨너머로 보았을 뿐 제가 직접 이렇게까지 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시집올 때 그저 맏며느리인 줄 알았지, 종가의 맏며느리인 줄 꿈에도 몰랐고 힘들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이번 추석은 우리 가족에게 의미 있는 추석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아이아빠랑 차례도 지내고 온 가족이 24년 만에 명절을 함께 보냈기 때문입니다. 직장 때문에 설, 추석 명절에는 내가 아이들을 업고 손잡고 다 데리고 힘들게 다녔는데 이번 추석은 운 좋게도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대학생이 된 아들이 운전을 하고 신랑이 옆에서 봐주면서 울진에 도착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일도 수월해지고 할 일도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종가의 차례상 차리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침개 부치고 무 가지런히 썰어 탕국 끊이고 송편 만들어 찌고 참…. 처음 시집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발을 동동 굴렀는데 이제 가마솥에 불도 척척 지피고 눈감고도 나물을 무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님과 남편을 필두로 무사히 차례를 지내고 차례 밥도 비벼 먹었습니다. 내가 했지만 정말 맛있더라고요. 또 지난 옛이야기들을 도란도란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점심을 먹고 차로 1시간 더 달려 친정에도 다녀왔습니다. 어느새 늙어버리신 부모님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어요. 30년 중풍으로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 30년 동안 아버지 병간호하느라 수척해지신 어머니를 보니 가슴이 아렸습니다. 그리고 진주에선 여동생과 제부가 올라와서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습니다.
한가위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잖아요. 마루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각자의 소원도 빌었습니다. 시골의 밤하늘은 별 천지입니다. 가로등도 잘 없는 그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얼굴에 별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여덟 살 질녀는 남자친구가 생기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어서 가족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더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대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음은 부자가 되었지만 얼마나 힘이 들던지 내 집이 최고다 하면서 곯아떨어지고 말았죠. 느지막하게 일어나 바리바리 싸주신 음식이며 푸성귀들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게 죄송스러웠고요. 못난 자식 그렇게 좋아하시고 반겨주시는데 쇠약해지신 두 집 부모님이 안쓰러웠습니다.
제 추석 후유증은 아마도 '그리움'인 듯합니다. 짧은 이틀 동안 함께한 가족과 친척들이 벌써 보고 싶어집니다. 또다시 모두 열심히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겠지만 명절이면 서로에게 이끌리듯 한자리에 모이는 가족, 그들이 있기 때문에 이 힘든 세상 그래도 살맛이 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함께 있기만 해도 편안하고 따스한 존재임을 새삼 다시 깨달았습니다.
추석 내내 웃고 이야기하느라 시끌벅적 정신없었는데 오늘은 바로 어제 그때가 그립네요. 그리움을 떨쳐내려고 시댁, 친정에 안부 전화 드렸습니다. 전화선을 타고 오는 따뜻한 목소리에 그리움은 저만치 물러나고 사람 향기 그윽한 추억만 내 마음속에 가득히 남았습니다.
장순이(대구시 북구 대현2동)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