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한 후보가 조순형 후보에게 따졌다. "다른 당 후보들은 '경제대통령' '교육대통령' 또 '무슨 대통령'하며 떠들고 있다. 당신은 어떤 대통령을 꿈꾸느냐". 조 의원은 즉각 '그냥 대통령'이라고 대꾸했다. 대통령은 장관 잘 쓰는 능력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가지도자의 최고 조건으로 품성을 꼽았다. 어떤 능력이나 개인적 특성보다 품성을 우선해야한다는 주장이지만 반론이 나오지 않은 토론이었다.
이번 대선처럼 대통령의 품성을 따지는 예도 드문 것 같다. 워낙 지난 5년간 데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눈만 뜨면 대통령이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가슴 졸인 세월을 살아냈다. '그놈의 헌법'이 있었기에 천만다행이었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 감은 다른 무엇보다 '성장과정' '성정' '품행' '포용력'부터 체크하겠다는 국민들이 많아졌다. 좋은 사람이 좋은 정치를 하리라는 각성이다.
이미 2500년 전에 공자는 깨우쳐 놓았다. 공자는 제자들과 수없이 묻고 답하면서 좋은 정치의 요체를 仁德(인덕)에 두었다. 제자들이 "인덕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안연의 물음에 "자기를 억제하고 말과 행동이 모두 예에 맞도록 하는 것(克己復禮)"이라 답했다. 중궁이 또 묻자 "일을 할 때 귀한 손님을 맞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모시듯 하는 게 인덕"이라고 했다. 정치는 성심성의로써 백성을 떠받들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권력을 잡자마자 널뛰듯 하며 민심을 걷어찬 누구와는 사뭇 다른 얘기다.
공자는 "어진 사람은 어눌하다"고 가르쳤다. 실행이 어려운 만큼 말을 함부로 내뱉지 못한다는 말이다. 언행 일치를 인덕의 완성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巧言令色(교언영색)은 인덕과 거리가 멀다고 단정지었다. 교묘하게 말을 꾸미는 위선적 얼굴은 지도자로 자격 없다는 훈계다. 공자가 말재주에만 능한 제자를 최악으로 여긴 것도 그 이유에서다.
그런 공자의 눈에 들 지도자가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일 것이다. 링컨은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접하자마자 내각 멤버부터 그렸다. 이미 머릿속에는 7명의 명단이 짜여 있었다. 자신과 공화당 후보공천을 다툰 라이벌 세 사람을 핵심에 기용하는 구상이었다. 국무장관 슈어드, 재무장관 체이스, 법무장관 베이츠. 경선 과정에서 하나같이 자신을 경험 없고 무식한 시골뜨기라고 무시한 사람들이었다. 한술 더 떠 해군장관, 우정장관, 전쟁장관은 민주당 출신에게 맡겼다. 전쟁장관은 변호사 시절 자신을 4류라고 경멸한 인물이었지만 집권 끝까지 함께 갔다. 자존심 센 이들 정치엘리트들에게는 "조국을 위해 당신이 필요하다"고 먼저 숙이고 들어갔다. 링컨에게 사사로운 감정, 정파간 대립 따위는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링컨은 통큰 정치를 했다. 국민화합을 최우선에 뒀다. 이름 없이 보낸 하원의원 한번과 두 번의 상원의원 선거 낙선 경험이 전부인 정치적 자산에서 놀라운 자신감이고 포용력이다. 오두막에서 독학으로 자수성가했지만 누구처럼 열등감도 없었다. 링컨의 지론은 '분열한 집안은 망한다'였다. 노예제도를 둘러싼 남북대립을 내다보며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다. 오늘의 미합중국을 가능하게 만든 지도력이다.
그의 됨됨이는 언론 관계에서도 빛났다. 그가 공화당 공천을 받자 민주당 성향의 신문들은 '노예제도 증오하는 유격대원' '무식한 4류 웅변가' '변경 출신 깡패' 등으로 일제히 혹평했다. 그렇지만 링컨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더한 비난과 모욕도 대범하게 넘겼다. 단지 자신의 노예제 소신을 왜곡하는 언론사에 서한을 보내 이해를 구한 게 '항의'의 전부였다. 누구처럼 언론에 이를 갈며 보복하겠다고 날뛰지 않았다.
이번 대선은 유권자 하나 하나가 엄격한 면접관이어야 한다. 수험생을 앞에 둔 면접관의 눈매로 각 후보의 인물 됨됨이를 채점해야 한다. 통찰력, 추진력, 정치철학도 중요한 평가항목이지만 품성에 가중치를 두자. 애초부터 공자 말씀에 부합하거나 링컨을 역할 모델로 삼을 만한 면면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눈으로 따져들어야 한다. 좀 부족하더라도 좋은 품성의 대통령이 낫다. 우선 4800만 마음이 편하다. 그래야 국민화합이 가능하고 나라의 집중력 곧 경쟁력이 생겨난다.
김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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